언감생심 영화배우를 꿈 꿔 본 적 없지만 무비 스타에 열광하긴 했었다. 음계도 제대로 못 읽는 주제에 오리지널 스코어만 찾아 들으면서 삽입곡과 영화 장면의 긴밀성을 얼치기로라도 탐구하고 싶었던 헐리웃 키드였다. 1978년 처음 나온 라이프지 화보집 『Goes to the Movies』를 거실 책장 맨 위에다 고이 모셔두고 집안의 보물인 양 떠받드는 나는 양장본 빨간 표지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보고 또 봤다. 그 화보집을 들추면 일세를 풍미한 수많은 무비 스타들이 금세라도 내 곁으로 바짝 다가서서 그들의 필모그래피를 장황하게 늘어놓을 것만 같았다. 마침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주제가인 <Moon River>가 흘러나오자 나는 감회에 젖고 만다. 눈 앞에서 오드리 헵번이 환생한다. 그녀를 미치도록 사랑했었다. 지금도 생생하다. 국민학교 4학년짜리 어린애가 영화 「My Fair Lady」의 하층 계급 여인에서 상류층 귀부인으로 바뀌는 일라이자(오드리 헵번 분)에 반해 그길로 그녀가 나오는 브로마이드, 책받침을 사러 부산 서면 바닥을 하루종일 훑고 다닌 기억이. 영화 「로마의 휴일」 앤 공주 얼굴 사진을 겨우 구했을 뿐인데도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다 그걸 품고 잔 기억이. 별쭝맞긴 했다. 1980년대 당시 책받침 3대 여신이라는 소피 마르소, 브룩 쉴즈, 피비 케이츠보다 한 세대는 족히 늙은 엄마뻘 배우에 푹 빠진 꼬마는 조숙한 것일까 비정상적인 것일까.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난다 긴다 하는 틴에이저 스타들은 젖비린내 나게 유치할 뿐 아무런 감흥이 없었지만 발랄하면서 우수가 서려 있고 세련되면서도 백치미 엿보이기까지 한 그녀만이 유독 나를 달뜨게 만들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수소문해 얻어 듣는 그녀에 관한 시시콜콜한 근황까지도 마치 연애편지 답장을 건네받은 사람인 양 나를 설레게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그녀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던 것이다. 나치에 동조한 파시스트 부친의 전력을 평생 원죄로 여겨 빈곤한 이웃들을 구제하기 위한 자선사업과 기부로 말년을 헌신한 그녀가 영화 「영혼은 그대 곁에Always」에서 천사역으로 그녀 생애 마지막 배역을 맡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천사역을 맡은 게 아니고 사실은 천사였으니까. 그런 그녀를 영원한 연인으로 내 가슴에 묻어둔 채 살고 싶었다. 1991년 대학 신입생 무렵 한눈에 반한 여학생은 오드리 헵번을 참 많이 닮았었다. 둘은 똑같이 발랄했고 가끔은 시름겨워서 더 이쁜 얼굴을 해 나를 미치도록 슬프게 했다. 호리호리하고 아담한 몸매도 닮았고 안으면 그다지 넓지 않은 내 품에 쏙 안겨서는 둥지로 날아든 어린 새마냥 아늑해했다. 여학생을 그녀로 동일시한 나는 그녀를 사랑하듯 여학생을 열렬히 사랑했고 내 청춘의 생기를 다 바쳤다. 그렇게 2년이 흘러 1993년 신학기를 앞둔 겨울 어느 날 여학생은 홀연히 내 곁을 떠났다. 공교롭게도 오드리 헵번이 암 투병 끝에 사망한 게 1993년 1월 20일이었다. 헐리웃 키드의 시절이 속절없이 종언을 고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