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has a plan

Everyone has a plan 'till they get punch

by 김대일

세상 수많은 명언 중에서 내게 이른바 '현실 자각 타임', 줄여서 '현타'가 오게 하는 건 마이크 타이슨 입에서 나왔다는 이 말이다.

-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지 않는 나는 그래서 상황 인식에 절대적 혹은 무조건적인 극단성을 배제하려고 애를 쓴다. 내가 암만 이것이라고 확신해도 이것의 상대적인 저것이 분명 존재하기 마련이니 만약 이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가 저것이고 말았을 때 밀려드는 좌절감은 의외로 막심해 정신적인 피폐함을 가중시킬 게 뻔해서 대단히 주의하는 편이다.

그런데 간혹 주변에 자기애가 지나치게 강하거나 또는 대책 없이 낙관적이라 상황의 상대성을 간과하곤 하는 이와 맞닥뜨릴라치면 조언이랍시고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게 마이크 타이슨의 명언이다. 확실한 건 그 사람도 나름의 계획이 수립되어 있고 계획을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구상한다. 문제는 그 계획과 전략이라는 게 모래 위에 쌓은 누각처럼 허술하고 빈약하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자기의 능력에 대해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대기보다는 근거 없는 호기를 버무려 과대평가하기 일쑤이거나 상황을 직시해 그에 맞는 대응책을 부심하지는 못할망정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안일한 무데뽀로 직면하려 든다는 데 그 심각성이 크다.

이용학원에서 친해진 여자 두 분이 있다. 이용학원을 찾는 이들은 모두 똑같은 목표를 가진다. 내 가게를 차리되 그 목표를 조기에 이루기 위해 거금을 들여 학원을 찾아 기술을 연마한다. 요는 학원에서 익히는 기술은 그 자체로 완성이 아니라 완성을 위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소양일 뿐이다. 따라서 학원에서 충실히 기본을 닦았다면 그 다음 단계로 현장으로 들어가 자신의 기술을 실무에 접목시키는 데 있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문제 해결을 위한 개선 방향이 뭔지를 고구해 다시 새롭게 연마해야만 한 단계 높이 도약할 수 있다. 그걸 부친은 '최소한 남 밑에서 명절 대목 여섯 번은 쇠어야 기술이 겨우 손에 익고, 또 제 가게 열고 명절 대목 여섯 번은 쇠어야만 기술로 겨우 먹고 산다'라는 완곡한 표현을 써가며 주장하신다. 그렇게 따지고 들면 내 개업도 성급했다. 2년이란 시간은 나만의 기술을 정착시키는 데 분명 길지 않은 수련 기간인데도 불구하고 가게부터 덥썩 열었으니 시행착오를 각오하지 않을 수 없다.

불가피하게 개업을 단행한 사연을 여기서 주절거리는 건 사족일 뿐이라 그만두고, 학원에서 친해진 두 여자분이 개업을 축하할 겸 찾아와 본인들의 진로에 관해 얘기를 해줬을 때 나는 또 여지없이 마이크 타이슨의 명언을 떠올려야만 했다. 미안한 얘기지만, 그들의 기술력으로는 어중잽이인 내가 봐도 실무 현장에서 버겁다. 그들은 자칭 유명짜하다는 학원 강사로부터 굳이 안 받아도 될 이른바 고급 기술을 수개월에 걸쳐 기백만 원의 수업료를 더 지불하면서까지 전수받았다지만 그걸 다 소화해 내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들이 배웠다는 고급 기술이라는 것도 당장 실무에서 써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그저 비싼 수업료를 냈음을 요란하게 선전할 뿐인, 이미용업계를 평정할 무림의 비기가 아닐 뿐더러 신출내기들로서는 시급을 요하는 바도 아니다. 그들도 시인했다. 막상 사람 머리를 앞에 두니 머릿속이 하얘지더라고. 들인 공과 돈에 비해 돌아오는 피드백이 부실해도 너무 부실하다. 그보다 나를 더 난감하게 만드는 건 그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과대포장하려 들고 그걸 기정사실화한다는 점이다. 돈은 벌어야겠고 당장 내 가게 차릴 엄두는 안 나니 알바 자리를 구해 돈도 벌고 실무도 쌓겠다고 그들이 포부를 밝히자 착각의 늪이 의외로 깊어 보였다.

설령 가게가 손님들로 미어터질 지경이라 직원을 구한다손 나는 그들을 고용할 마음이 일도 없다. 대신 견습을 원한다면 받아줄 용의는 있다. 견습생으로 받아준대도 바닥 청소, 손님 머리 감기기, 염색 바르기 따위 보조 업무에 주력하면서 어깨 너머로 원장의 기술을 스캔해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처절한 노력과 정성이 보일 때 손님 머리를 맡길까 말까를 고민할 것이다. 현장에서 이뤄지는 모든 작업은 지불한 돈에 응당한 만족할 만한 성과물을 이끌어내 손님으로 하여금 재방문의 확률을 높이는 소리없는 전쟁이다. 나는 엄중한 실전에 애송이 훈련병을 투입시킬 만치 배포 큰 지휘관이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원장 대부분이 나와 엇비슷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여 내가 내린 결론은, 그들에게 시급한 건 일자리 구하기가 아니고 냉정한 현실 인식이 먼저다. 자기의 주제를 파악하고 그럴싸하게 세웠다는 계획과 전략이 냉혹한 현실에서 과연 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철한 분석이 최우선이다.

비겁하게도 나는 그들과 척이 지기 싫어 충심에서 우러났으나 듣기에 따라서는 야멸찬 조언을 끝내 건네지 못했다. 목젖까지 올라온 마이크 타이슨의 명언도 다시 가슴 아래로 밀어넣고 말았다. 대신 이런 주선은 했다. 부친 가게로 가시라. 가서 부친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시고 후일을 도모하시라. 결과론적으로 나도 부친의 의견을 좋아 여기까지 이르게 됐으니까. 마이크 타이슨의 명언을 부친만의 화법으로 재구성해 독설인데 귀한 보약같이 몸에 좋은 조언으로 미망에 빠진 그들을 구제해 주길 바랄 뿐이다. 세상에 쉬운 일은 절대 없다. '절대'란 말을 쓸 수밖에 없는 나를 이해해 달라. 경험은 그래서 무서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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