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in time

by 김대일

화요일은 가게를 쉰다. 쉬는 날 아침 막내딸 밥 챙겨 주고 등교 준비하는 걸 지켜보다가 집에서 몇 시에 나가냐고 물었다.

- 8시 2분.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친구와 시간을 정해 같이 만나 학교를 가곤 하는 막내딸이다. 의아해서 물었다.

- 8시면 8시고, 8시 5분이면 5분이지 2분은 또 뭐냐?

친구하고 그렇게 정해 놓고 나가면 엘리베이터에서 한번에 만난다나 어쨌다나. 참고로 친구는 24층, 막내딸은 20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탄다. 그들만의 룰인 셈인데 오늘 막내딸이 현관문을 나선 시각은 정작 8시 3분이었다.

부친 가게에서 일하는 김 군은 나보다 8살 아래다. 근 10년을 부친 밑에서 일하다 보니 식구나 다름없는 사이가 됐다. 김 군이 모는 차를 동승하면 특이한 점을 발견한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을 칼같이 못 박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아무개 병원은 9시 17분에 도착하고 해운대 우리집까지 1시 59분에 닿는다는 식으로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제 시각에 도착할 때가 아주 없진 않지만 대체로는 연착하기 일쑤다. 도로 사정을 감안해 넉넉하게 시간을 잡겠대도 늦는다고 타박할 사람 없지만 그는 네비게이션 화면에 뜬 예상 도착시간에 유독 집착한다.

막내딸 등교를 지켜보면서 김 군을 떠올린 나는 'just in time'에 관한 상념에 잠시 빠졌다. 데드라인을 정해 매진하는 건 자신의 성실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기회이면서 자청한 촉박함에서 비롯되는 강박증을 극복하려는 자기 투쟁이다. 다행히 정해 놓은 시한에 완료가 되면야 성취의 뿌듯함으로 한껏 고양될 테지만 지연되었을 때 지불해야 할 송구함 역시 만만찮은 후폭풍으로 작용할 게 틀림없는 양날의 칼 같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긴 하지만 모든 걸 'just in time', 즉 '제때에 알맞게'나 '바로 때 맞춰' 해치우겠다는 발상은 버겁다. 성마르기 이를 데 없는 내가 이렇게 말하면 표리가 부동하지만 일 벌여 놓고 제가 그어 놓은 데드라인에 임박해서까지 수습하지 못해 공분을 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전력을 주홍 글씨처럼 새기고 사는 사람으로서는 설령 불가피하다 한들 불가능한 상황을 자초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더 이상 나로 인해 초래되는 불신감이랄지 배신감 따위에 견딜 재간이 나는 없으니까. 하여 내 약속은 혹시 모를 만일을 늘 감안해 완충 시간을 덧대기로 한다. 가게 문을 7시 30분에 닫지만 가악중에 손님이 들이닥칠 수 있으니 8시에 만나기로 했어도 일이십 분 정도 기다려 주는 아량을 기대한다. 행여 기다리기 지겨워 그대 먼저 밥술을 뜨건 술잔을 채우건 난 전혀 개의치 않겠다. 되레 늦어 미안해할 나를 배려하는 것으로 감사하면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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