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방 최고 연장자와 최연소자는 열 살 터울이다. 나이대 스펙트럼만 넓지 실상 4~50대 중년들이다. 달리 말해 어디 가서 말문 닫아 걸고 눈치나 보는 숫보기들의 집합이 아니라는 소리다.
브리핑하듯 그날그날 시사時事를 모아서 하루에 한 번 꼭 단톡방에 올리는 이가 있다. 일목요연하게 요약해 올리니 세상사에 관심은 지대하나 여건 상 시시콜콜하게 접근하기는 쉽지 않은 이들, 특히 외국 거주자들한테는 고국의 이모저모를 파악하는 데 꽤나 유용한갑더라.
엊그제였다. 미국 사는 이 아무개 형이 대통령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을 발표한 대통령 당선인을 두고 이전에 따르는 불편함이랄지 대통령도 되기 전에 독선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려 드는 점에 대한 우려의 뜻을 되우 조심스레 비췄다. 단톡방에 올라오는 이 형의 언급을 다년 간 지켜봐 온 바로는 그의 정치색은 분명하지 않다. 어쩌면 의식적으로라도 중립 노선을 견지하려는지도 모를 일이다. 치우치지도 과하지도 않은 성향의 소유자로서 대단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기까지 한 이가 그런 글을 올린 게 뜻밖이긴 했으나 그럴 만하니까 얘기를 꺼낸 게 아닌가 하면 별일도 아니었다. 먼 타국에 살지만 고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주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비평 한 자락 올렸다고 그게 그리 생게망게한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문제는 직후에 벌어졌다. 이 형과 동기 사이인 또 다른 이 아무개 형이 이 단톡방에서는 정치와 종교 얘기는 자제하자는 둥 자기는 수구 꼴통이라는 둥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냐는 둥 객쩍은 글을 밑에 달았다. 그러고 얼마 안 가서는 그 두 이 형보다 여섯 살이 어린 또 이씨 성을 가진 아무개가 미국 사는 이 형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작금의 청와대 이전이 왜 문제가 많은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조목조목 밝혔다. 글은 조리가 분명했고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개진했다. 여기에다 이 아무개의 글을 옮기는 건 무리지만 가장 눈에 띄는 구절로 '보수는 나라의 안위와 발전에 기초한 것이라 생각한다. 고로 나는 보수다'였다. 보수주의자의 눈으로 봐도 청와대 이전에 문제가 많아 보인다는 뜻이리라.
장황한 말 풍선 세 개가 연속으로 뜨자 맨 처음 문제를 제기한 미국 사는 이 형이 말이 더 많아지기 전에 후다닥 마무리를 짓긴 했는데 동기인 또 다른 이 형이 대뜸 미국 이 형한테는 동기 모임 방에서만 보자는 둥 단톡방 전원을 상대로는 단톡방을 나갈 건데 자기를 또 초대 하는 새끼는 가만 안 둔다는 둥 자기의 엄포 글을 단톡방 회원들이 다 본 뒤에 단톡방을 나가야 자기를 또 초대하는 불상사가 없을 거라는 둥 단톡방 최고 연장자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옹졸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댓글을 달았다. 하루 뒤 정말 탈퇴했다.
정치와 종교의 중립성을 암묵적으로 결의했다지만 단톡방이라고 할 말 못하게 족쇄를 씌우는 건 언젯적 발상인가. 민감한 사안일수록 의견이 마음에 안 들면 반론을 제시하면서 건전하고 유익한 토론의 장으로 활용해도 썩 나쁘지 않다. 나이를 헛먹은 게 아닌 성숙한 인격체들의 집합체라면 지켜야 할 마지노 선을 망각할 일도 드물 테고. 성향이 다르다고 혹은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막내동생뻘인 사람 무안 주듯 단톡방을 나가 버리는 꼬락서니는 암만 이해하려 해도 꼴불견일 수밖에 없다. 다음 날 말풍선 작렬했던 이 아무개에게 나는 따로 문자를 보내 격려했다.
어제 네 글을 읽고, 그냥 잘 올렸다는 말 전하고 싶어서 문자 보낸다.
이른바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한 사이'라고 표방할 정도면 다루기 껄끄럽고 민감한 사안을 두고 언사를 높여가며 입씨름도 하고 피 터지게 티격태격하면서 부대껴야 더 돈독해지는 법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면 무늬만 형제지 지나치는 행인 사이만도 못하지 않나 싶다. 정치든 종교든 자기가 생각한 바를 기탄없이 표현하고 그것에 대한 반론도 제기하면서 단톡방 회원들이 품고 있는 시국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나는 본다. 물론 지켜야 할 마지노선을 지킨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너의 글은 지극히 적정했고 타당하다. 그 꼴통 보수라고 자처한 양반은, 내가 느끼기에, 자기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이의 의견을 경청할 마음이 아예 없어 보이는데다 그걸 정치성, 종교성의 무풍지대로써의 단톡방이라는 허울을 내세워 깔아뭉개려고 했다. 비겁하게도 자신의 단톡방 탈퇴를 조건으로 내걸고서 말이다. 고참의 품격은 아니라고 본다. 내가 이 단톡방에서 가장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중요하고 필요한 것들은 정작 외면하면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그저 두루뭉술하게 처신하려 드는 것. 과연 그게 옳은 행태인지는 회의적이다. 그저 친목 도모를 위한 가벼운 관계망일 것 같으면 차라리 '피를 나눈~' 따위는 운운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도 싶고.
사설이 길었다. 다시 결론은 어젯밤 너의 발언은 적절했다. 글 덕분에 이 아무개라는 사람을 새삼 깊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 고맙고. 건강하고 행복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