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잖아 보이는 사내가 옆머리는 투블럭, 뒷머리는 상고형으로 깎아달랬다. 염색은 짙은 갈색으로 내친 김에 두피 마사지까지 주문했다. 매상 올리는 데는 와따인 손님이다. 한창 깎는데 서울에서 미용실을 운영했었다고 자기를 밝혔다. 잘 나가던 중 머리에 병을 얻어 가게를 접었고 수술 후 짐 싸 고향인 부산으로 낙향했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술술 잘도 풀어냈다. 그러고 보니 머리 왼쪽으로 칼 댄 자국이 선명했다. 몸이 웬만치 회복되었고 해서 부산에서 새로 가게를 차려 볼까 싶어 준비하던 차에 동네에 개업한 커트점이 있대서 찾아왔다고 했다. 인테리어 비용으로 얼마가 들었냐 이용기구를 구매한 업체는 믿을 만한 곳이냐 따위 오픈 관련해 세세한 것들을 물어 왔고 아는 선에서 대답해줬다.
말문 터진 손님 장단 맞추느라 주거니 받거니 하던 중에 서울과 부산 물가 차이가 화제로 떠올랐는데 그 중심에 커트 요금과 종업원 급여가 있었다. 아다시피 내 가게 커트 요금은 5천 원이다. 업계 평균 요금을 낮출 만큼 저렴한 편인데 부산 여기저기서 동네 장사하는 커트점이나 미용실 커트 요금은 비싸봐야 1만 원 안팎이다. 하지만 서울의 커트 적정 요금은 2만 원 선으로 그것도 싼 축에 든다며 자랑삼아 뇌까리는 손님이었다. 프랜차이즈로 운영하는 가게는 3만 원을 호가한다고도 했다. 종업원 급여는 놀랄 노 자였다. 알바 시절 내가 받은 일당은 평일 8만 원, 주말 9만 원에 식사 제공이었다. 박한 편은 아니었지만 어디 가서 그리 받았다고 했다간 좋은 소리는 별로 못 듣는 수입인 건 맞다. 후하게 쳐주는 데라고 해서 기마이가 좋은 건 또 아니다. 최저임금보다 정말 쥐꼬리만큼 더 얹어 책정한 일당이 하루 10~11만 원 선이나 그것도 많이 주는 편이라 남는 게 없다고 업주들은 울상이다. 월급으로 치면 250만 원 선이다. 단, 주 6일 근무를 했을 때 그나마 받을 수 있다. 점잖아 뵈는 손님의 증언을 그대로 좇자니 검증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에 비해 서울은 직원의 기술력, 인센티브 조건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는 하나 중급 기술자 기준으로 월 평균 급여가 월 280~300만 원 정도고 식대 및 간식비 40~60만 원은 별도 지급이라고 했다. 주 5일 근무를 원칙으로 하고.
20세기 끝자락에 떠다밀려 상경해 5~6년을 곁방살림하듯 지냈던 서울만 기억하던 나는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물가 그래프가 우상향 아닌 때가 없긴 하지만 2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서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아연실색하고 만다. 하기야 부산에서 서민 음식이라던 돼지국밥, 밀면이 7~8천 원을 호가해도 착한 가격이라는 부산 물가도 만만찮기는 마찬가지지만 머리 한 번 깎는 데 2~3만 원씩이나 지불하는 건 가당찮아 보여 나는 그에게 물었다.
- 요금이 비싼데도 손님들이 가만히 냅둬요?
- 그럼요. 서울사람 깍쟁이란 소리 다 옛말입니다. 요금에 걸맞은 서비스를 받았다고 만족하면 돈 아깝다는 생각 전혀 안 해요. 받은 만큼 낸다는 문화가 완전히 정착된 거죠. 그러니 손님들 더 유치하려고 업주들 인테리어도 고급으로 쓰고 월급 더 얹어 주면서까지 고급 기술자를 구하려고 하지요.
- 아니 도대체 서울 사람들 돈을 얼마나 잘 벌길래 다른 지역보다 2~3배 높은 물가에도 버티는 거죠?
- 서울 사람들 돈 많이 버는 줄 모르셨어요? 지방보다 2~3배는 더 벌걸요? 서울이니까요.
서울에서 15년씩이나 살다 왔다며 은근히 뻐기는 듯한 뉘앙스가 가소로웠고 부산에 살면서도 서울만을 모범으로 삼는 듯한 언사가 썩 못마땅했다. 더군다나 말이 말을 낳는 가담항설의 속성 상 설령 동종업계에 몸을 담았다손 그 정보라는 걸 전적으로 믿지도 못하겠더라. 하지만 현격한 차이가 나는 사실은 언론을 통해 익히 들어본 바였다. 당장 며칠 전 신문 사회면만 봐도 그렇다. 수도권 집중화 현상과 지방 소멸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연봉 상위 1% 근로소득자 4명 중 3명은 수도권 소재 기업에 다니는 것으로 조사됐다(<이러니 수도권으로 몰리지...상위 1% 근로소득자 75%가 수도권 직장>, 한국일보, 2022.03.21.). 헌데 나는 정말 궁금하다. 아무리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한다지만 지방보다 두세 배 더 많은 수입을 창출해 낼 만큼 서울이란 곳이 과연 사람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곳인지, 역으로 지방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지방민들은 다 저열한 멍청이로 취급받아야 하는지, 그렇게 많이 벌고 잘 쓰는 사람들이 정작 행복하냐고 물으면 '글쎄요'하며 왼고개를 젓는 그 이유는 또 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