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예능 선수'가 되었나

by 김대일

왕년에 이름을 날린, 지금은 다들 은퇴한 야구, 축구, 농구 스타 4명이 외딴 섬에서 밥 해 먹는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다른 채널을 돌렸더니 거긴 또 섬에서 소라 까먹고 있어야 할 야구 스타가 그가 운영하는 햄버거 가게 테이블에 은퇴한 지 얼마 안 된 프로야구 스타 선수 둘이랑 둘러 앉아 뭐가 그리 재밌는지 파안대소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게 아닌가. 또 어떤 종편 예능은 인기 비인기 안 가리고 대한민국 스포츠 종목에서 한가락씩 했었고 그 영향력이 여전한 스포츠 스타들을 한데 모아다가 아예 축구팀 하나를 만들어서 전국을 돌며 도장깨기 식 시합을 벌이는 포맷으로 인기를 끄는가 보더라. ​예능 프로그램을 썩 선호하지는 않는데 가게에서 줄창 하는 일이란 게 리모컨으로 채널 돌리는 놀이다 보니 요즘 뜨는 예능 프로그램의 트랜드를 대강은 넘겨짚을 수가 있겠다. 하여 내린 내 결론은 요새는 은퇴한 스포츠 스타를 모시지 않으면 프로그램 흥행을 담보하기 어려운가 보다였다.

선수 시절 스타로 등극하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부귀공명은 엉뚱한 뻘짓 안 하고 제 처신만 똑바르면 은퇴 이후에도 주욱 이어질 게 뻔하다. 아닌 게 아니라 TV를 전세라도 낸 양 뻔질나게 등장하는 스포츠 스타들의 기름기 좌르르 흐르는 면상과 여유만만한 행동거지만 봐도 틀린 소리가 아닐 성싶다. 세간의 이목을 끄는 큰 대회나 올림픽에서 우승하거나 금메달을 딴 선수가 은퇴 이후 국가와 국민을 위해 후진 양성에 힘 쏟겠다는 지극히 전체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은퇴사가 통상적이었던 게 벌써 고릿적 얘기가 됐다. 근자에는 개인적 취향을 더 존중받는 세태다 보니 우국봉공이니 국위선양 따위를 운운하는 자체가 시대를 역행하는 따분한 촌티의 본색이라 취급받지 말란 법 없다.

이쯤에서 한때 몸 담은 종목에서 일가를 이룬 자기의 기량을, 꼭 국가를 위한 노력 봉사 차원이 아니라, 그 스타를 동경하면서 자란 꿈나무에게 전수하고픈 순수한 후진 양성이란 소명의식에는 관심이 전혀 없는지가 나로서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런 거 있잖은가. 사람은 자기를 보고 따르는 누군가를 지도하면서 강한 쾌감을 느끼고 그걸 원동력 삼아 삶을 보다 건전하고 윤택하게 꾸리려는 의욕이 충만해지는 긍정적 효과 말이다. 적절한 예로 교사를 든다면 너무 고리타분한 발상인가. 하여튼 한 일간지 문화스포츠 담당 기자가 쓴 칼럼을 우연히 읽다가 그간 들었던 내 의문이 우문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세상은 몰라보게 변했는데 과거라는 옷깃만 죽어라 붙잡고 놓을 생각을 않는 내가 어지간히 둔한 놈이라는 사실만 새삼 확인하게 돼 무안할 뿐.

결국 그들이 더 중요하게 여기는 건 스트레스로 빛이 바랠 명예보다는 도깨비 방망이마냥 휘두르기만 하면 금전이 뚝딱하고 나오는 인기라는 채찍이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스포츠 스타만의 애환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한때는 세인의 지대한 관심과 귀감의 대상이었던 이들의 예능 투신이 실은 팍팍한 현실을 회피하려는 자구책인 듯해 어째 씁쓸하다.


최근의 스포츠 예능 붐에 편승한 이들의 경우는 좀 달라 보인다. 은퇴 직후 방송에 활발하게 출연 중인 스포츠 스타 A에게 지도자 데뷔 의향을 묻자 "시켜줘도 안 하겠다"는 냉소적인 답이 돌아왔다. 안타를 치고 나간 선수의 장갑을 받아주고 배팅볼을 던져주는 궂은 일은 감수할 수 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그립지만 그들도 선수 때 누렸으니까. 박봉의 코치직에 미련이 없다는 거다. 슈퍼스타는 아니더라도 현역 시절 억대 이상의 연봉을 받다가 하루아침에 느끼는 박탈감과 경제적 타격은 크다. 코치 때부턴 무늬만 프로일 뿐 성과를 내도 연봉이 크게 오르지 않는다. 공무원처럼 매년 일률적으로 결정된다. 그리고 언제 무슨 이유로 경질돼도 할 말 없는 고용 불안까지 코치직은 소신이나 열정을 펼치기보단 '연명'에 급급하게 만든다. 그래도 그 자리에 연연했던 건 돈보다 일자리 자체였다. 수요는 적은데 공급이 넘쳐나는 구조가 코치의 열악한 처우를 방치했다.

종목마다 차이는 있지만 프로스포츠 코치의 평균 초봉은 5,000만 원 정도다. A는 단 한 달 동안 각종 예능 출연으로만 그 이상을 벌어들였다고 귀띔했다. 영원한 갑일 줄 알았던 구단들의 코치 구인난이 현실화될지도 모른다. (<36.5℃-그들은 왜 '예능 선수'가 되었나>, 한국일보, 202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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