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일요일(41)

by 김대일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윤재철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술값은 재들이 낼 거야

옆 자리 앉은 친구가 귀에 대고 소곤거린다

그때 나는 무슨 계시처럼

죽음을 떠올리고 빙긋이 웃는다

그래 죽을 때도 그러자

화장실 가는 것처럼 슬그머니

화장실 가서 안 오는 것처럼 슬그머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할 것도 없이

빗돌을 세우지 말라고 할 것도 없이

왁자지껄한 잡담 속을 치기배처럼

한 건 하고 흔적 없이 사라지면 돼

아무렴 외로워지는 거야

외로워지는 연습

술집을 빠져나와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 걸으며

마음이 비로소 환해진다

(부친은 농 삼아 '자는 잠에 뜨고 싶다' 되뇌이곤 하시는데 화장실 가는 것처럼 슬그머니 갈 수도 있구나, 감탄(?)했다.

자칫 비감에 흐느적거릴 시를 중심 잡게 한 구절은 맨 마지막 '마음이 비로소 환해진다'다. 영악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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