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공부의 어려움을 '울기와 웃기'로 가름한, 믿거나 말거나식 가설이 왕년에 있었다. 매우 어중되고 썰렁한 이 정의定義에 따르면 영어는 웃고 들어갔다가 울고 나오는 말이었다. 불어는 울고 들어갔다가 웃고 나온다고 했던가. 독일어는 울고 들어갔다가 울고 나오는 언어로 호가 났다. 일본어는 축에 들지 못했고, 중국어는 자장면 속에 아직 묻혀 있었다.(최일남,『풍경의 깊이 사람의 깊이』, 문학의문학, 88쪽)
고교 시절 제2외국어는 독일어였다. 학력고사 난이도를 고려한 학교의 전략적이면서 일방적인 과목 결정으로 어렴풋하게 기억한다. 상대적으로 점수 올리기 수월한 과목으로 독일어를 골랐다지만 돌이켜 보면 이상한 구석이 없지 않다. 대다수 남자 고등학교 제2외국어가 독일어인데 반해 여자 고등학교는 주로 불어였고 간혹 일본어를 선택지로 추가했다. 학력고사 1점이 아쉬운 판에 '울고 들어가는' 불어를 굳이 택하는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독일어 문제가 쉬운 데 반해 불어, 일본어가 까다롭게 출제돼 과목별 점수 차이가 눈에 띄게 벌어지면 대입 시험만 치뤘다 하면 모든 국민이 전투적으로 변하는 한국 사회 특성 상 민란이 일어날 게 뻔하다. 그러니 시험 난이도로 외국어를 선택하는 짓은 난센스다. 짐작컨대 여학교 관계자는 여고생들의 탁월한 제2외국어 언어습득 능력을 감안해 여러 선택지를 두고 고르게 하는 유연성을 발휘한 건 아닌지, 남학교는 독일어하면 떠오른 투박성에 기인해 남자의 언어로써 제2외국어를 접근한 건 아닌지, 그게 맞다면 마초도 그런 마초가 없다. 이상 '라떼는 말이야' 제2외국어 선택에 얽힌 해괴한 망상이었다.
아무튼 하씨 성을 가진 고교 시절 독일어 선생은 유치원생한테 가갸거겨 가르치듯 코밑이 거뭇거뭇한 선머슴같은 녀석들을 상대로 암기를 잘 해야 외국어를 잘 할 수 있다면서 라임을 타며 부르는 랩마냥 독일어로 숫자 세기, 인칭대명사 외우기를 몸소 시전하셨다.
학교 영어 1등급이 미국사람 앞에서 쩔쩔매듯 오로지 학력고사 고득점에만 초점을 맞춘 문법 위주 독일어 공부가 글로벌한 인재 양성에 필수인 외국어 습득 능력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는 따로 덧붙이지는 않겠다. 그럼에도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에 나오는 독일어 맨 첫 소절( 베토벤 가곡 <Ich Liebe Dich>를 삽입)은 알아들어서 그 가사를 왜 도입부에 집어넣을 수밖에 없는지는 어림짐작할 수 있었고, <Jeanny> 에서 둔탁하고 각진 독일어로 읊조리는 Falco의 음울한 랩에 격하게 반응하는 까닭이 선생의 신통찮은 독일어 발음일지언정 고교 삼 년 내내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꼭 독일어 정서를 유감없이 주입당한 학습의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부산 지역 유일의 부산대 독어, 불어학과가 통폐합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부산대는 구조 재편 방안의 일환으로 사범대인 독어교육학과와 불어교육학과를 인문대 독어독문학과와 불어불문학과를 각각 통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학과들의 인원수가 적어 수업과 학술 활동에 무리가 있고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제4차 산업혁명 등 시대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학과 통폐합 방안을 마련했다는 게 학교 설명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학과 재학생, 졸업생들은 4차 산업혁명과 학과 통폐합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하면서 계획안을 비판한다. 반면 부산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학과 통폐합 발표는 학령인구 감소 시대에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반응도 있어 학내 구성원 사이에서 온도 차가 있다고 한다.(국제신문, 2022.04.04. 기사 참조)
영어 아닌 외국어를 배워 보겠다는 사람이 없진 않을 게다. 언어 습득을 키우기 위한 순수 학문적 접근을 막는 건 다양성을 무시하는 처사다. 암만 생각해 봐도 언어를 배우는 것과 4차 산업혁명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나 역시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단순히 경제논리로만 접근해 내놓은 통폐합 계획이라면 조만간 국어국문학과도 언어가 서로 닮았다는 이유로 일어일문학과와 합치지 말란 법 없다. 그 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나온 졸업생으로서 강 건너 불구경할 계제가 아니라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