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사 머리는 누가 깎아주나

by 김대일

B형이 느닷없이 물었다.

"니 머리는 누가 깎노?"

염색을 하다 말고 거울에 비친 형한테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가발집 원장이요."

가발을 쓰고 다니는 나인 줄 몰랐는지 형은 몹시 놀라는 눈치다. 가발은 감쪽같고 장교머리처럼 바짝 쳐올린 품이 멋드러져 보인댔다. 대를 이어 거래를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다 있다. 메이커 가발보다 더 꼼꼼하게 손님 두상, 취향을 살펴 만들어내는 가발이 일품이지만 몇 올 안 되는 본 머리를 자기 머리 가꾸듯 관리해주는 가발집 원장이면 알조다. 바야흐로 강호의 숨은 고수가 따로 없다. 숱이 없어 고민인 분들한테 강력 추천해도 뒷말이 전혀 나올 리 없다에 내 전 재산과 머리카락을 걸겠다.

그건 그렇고 형 질문이 참 신박하다고 느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제아무리 '가위손'이라손 이발사 역시 제 머리 못 깎기는 마찬가지다. 남의 머리 다듬어 벌어먹는 처지니 까탈스럽기로는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이발사의 머리를 깎아주는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가발을 쓰는 부친은 가발집 원장한테 일주일에 한 번 쉬는 화요일마다 가서 관리를 받는다. 가발 쓰는 이발사가 드문 편이니 우리 부자는 열외로 치겠다. 부친 가게에서 일하는 김군은 부친한테서 깎는다. 숱이 적고 모발에 힘이 별로 없는 김군 머리를 스타일 내기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그걸 부친이 깎아주니 김군으로서는 호강도 그런 호강이 없다. 그러고 보면 점방에 일꾼이 둘 이상이면 상호간에 부탁하면 될 일이겠다. 나처럼 1인 업주면 천상 요금 내고 다른 커트점에서 정식으로 머리를 깎든가 상종하는 이발사 동료가 차린 가게로 빈손으로는 멋쩍으니 박카스 한 병이라도 손에 쥐어 주고 지나던 길에 들른 양 눙치다가 슬쩍 커트 의자에 앉아서는 '머리가 왜 이 모양이지? 연습 삼아 골라주라'며 수작을 걸지도 모른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내겠다는 심보다.

따지고 보면 뻔히 보면서도 내 힘으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것들 투성이인 게 인생인 성싶다. 우짜든동 혼자 해결하겠다고 발버둥치다 힘이 부치면 낙담하기 일쑤다. 혼자 해결할 수 있다는 만용이 아니면 내 못난 꼴을 보이기 싫은 같잖은 오기 탓이리라. 내 머리 내가 못 깎는다는 당연한 이치를 일찍 깨우쳤더라면, 나보다 내 머리를 더 잘 아는 가발집 원장한테 진작에 맡겼더라면 굳이 안 해도 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가 들긴 한다. 그나마 더 늦기 전에 알았으니 다행이다. 내 머리 내가 절대 못 깎는다. 인생의 암초를 맞닥뜨렸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발사한테 머리 맡기듯 속 터놓고 해결책을 타진해 보라. 신간이 한결 편할걸.

작가의 이전글독일어와 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