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자이면서 작가인 정희진의 글을 읽기란 무척 버겁다. 작가의 글쓰기는 내가 여지껏 읽어 왔던 여느 글쟁이들하고는 다른 파격과 이단의 매력을 선보이지만 해박하면서 그 깊이를 알 길 없는 지식을 쫓아가기가 벅찰 뿐더러 '이 놈도 나쁘고 저 놈도 마찬가지다'라는 양비론(양시론도 없지는 않지만 그녀의 글을 찾아서 읽는 열혈 독자로서 감히 내 견해를 밝히자면 그녀는 대체로 시니컬하다)이 정교한 논리 위에서 펼쳐지면 나 역시 이 놈이나 저 놈 중 한 놈일 수밖에 없다는 송구함에 글 읽던 눈을 슬며시 거둔 적이 여러 번이기 때문이다. 여성학자라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 작가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에 글의 칼을 겨눈다.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과 집단 학살, 여성주의 심리 상담, 인간의 고통을 글로 표현하는 것 등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밑천 없이 남성과 여성의 평화로운 공존만을 운운하는 내가 단작스러워 정희진이 쓴 글을 찾아 읽으며 그것을 여성학의 주교재로 삼아 여성에 대한 이 시대의 부조리에 대항하는 비판의식을 벼리려 애쓴다. 남자와 여자가 공존하는 건 자연의 섭리이고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억압하고 조롱하는 것이 결국 스스로를 욕 보이는 꼴일 뿐이다. 채신머리 바르게 하고 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정희진을 옹호하고 이 세상 모든 여성들을 옹호한다.
선거 공약이랍시고 SNS에 올린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가 기실 지금의 대통령 당선자가 일부 안티페미니스트 남성을 등에 업은 소속 정당의 대표와 극적으로 화해하기 위한 대가였다는 언론평을 들을 때부터 대권을 거머쥔 세력들이 제정신을 가진 정치세력인지 의심스러웠다. <윤석열 정부, 기어코 '여성'을 지우겠다는 건가>(김민아 논설위원, 경향신문, 2022.04.13.)라는 제하의 칼럼을 보면, 인수위는 여가부 장관은 임명될 것이고 "임명된 장관은 좀 더 나은 개편 방안이 있는지 계획을 수립할 임무를 띤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여가부 폐지 공약은 유효하다"면서 일부 지지층을 달래는 친절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문맥으로만 따지면 새로 임명될 여가부 장관은 부처 폐지를 담당하는 일종의 지뢰처리반 혹은 폭탄해체반이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결국 폐지될 테지만 그 시기는 지방선거 이후일 게 뻔하다. 정치 모리배들의 머릿속엔 온통 선거뿐이니까.
나는 오늘 정희진의 글과 위에서 제시한 칼럼을 동시에 소개하면서 여성을 지우려고 작당하는 정치 모리배들의 최후를 상상한다. 정말 몰라서 모르는 건지 애써 외면하려는 건지는 그들이 아니 되어봐서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세상의 반은 여성이라는 것과 그들이 갈수록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