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밥상머리에서 울고 말았다 막내딸이. 어지간히 속이 상했었나 보다. 그간의 눈꼴사납던 짓은 전초전에 불과하다는 듯 걔는 펜싱에 진심인 막내딸한테 친구라면 해서는 안 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졌다.
- 훈련하는 애들 다 선수처럼 보이는데 너는 그냥 펜싱 취미로 하는 애같애. 조금 잘해 보이는 취미반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걔한테 쌓인 불만을 며칠 전에 들었던 바(내 글 2022.04.11. 「고민」) 최종적으로 카운터 펀치를 맞은 듯 나도 벙쪘다. 서운하고 서러운 감정이 복받쳤는지 막내딸은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속으로만 꾹꾹 참아왔던 군던지럽기 짝이 없는 걔의 행상머리를 마구 토해냈다. 지금 필요한 건 추상같은 결단이라고 아비는 마음먹었다.
그간 쌓은 정이 얼만데 돌연 친구와 거리를 둔다는 게, 불가피하다면 절교까지 단행한다는 게 막내딸로서는 제 살을 도려내듯 아픈 선택임을 모르지 않는다. 십오 년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모진 결정을 내려야 할 지금이 여리디 여린 순둥이한테는 감당하기 벅찬 마음의 짐일지 모른다. 하지만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손절을 강요받다가 끝끝내 용단을 내려야 할 때가 부지기수다. 어차피 겪을 시련이면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듯 이참에 모질게 경험해봄으로써 내성을 기르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자녀를 양육하는 데 있어 모 아니면 도 식의 일도양단을 강권하는 건 아비로서 할 짓이 아니라고 늘 경계했다. 세상은 넓고 다양하며 앞으로 무수한 사람들과 교류할 애들인데 이건 좋고 저건 나쁘다, 이 사람과는 어울리고 저 사람은 멀리 하라는 식의 편가르기는 애들을 옹졸하게 만들 뿐이니까. 대신 가능한 한 많이 부딪혀 보고 나서 과연 어떻게 대응하는 게 최선책인지 스스로 터득하거나 혼자 결정하기 혼란스럽다면 가족과 진지하게 상의하면서 접근하자는 게 신조였다. 하지만 그런 숙고의 시간을 생략한 채 절교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걔와의 관계 정리를 다그친 건 막내딸만큼이나 나도 분한 감정을 억누를 길이 없어서였다.
어쩔 수 없이 딸바보인 나는 막내딸이 겪었을 고통을 여기에다 모조리 까발리고 싶지만 어른 체면에 겨우 관둔다. 친구라면 무릇 서로를 존중하고 격려해주는 정서적 유대감 속에서 발전해 나가는 동반자이다. 친구 사이는 우월적 지위란 게 있을 리 없는 동등함 그 자체인데도 무시하고 깔보고 홀대하며 그것도 모자라 자존감까지 까뭉갠다면 이는 친구라는 허울을 덮어쓰고 자행하는 농락이다.
거리를 두겠다고는 했지만 막내딸은 아마 고민이 클 게 뻔하다. 남 앞에서 싫은 소리라고는 단 한번도 낸 적이 없는 녀석이 걔와 척을 지기란 아비 앞에서 단단히 결심이 선 모습을 보였음에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행여 그런 낌새를 채고 전과는 판이하게 자기를 대하는 상대에 당황해서 결심한 바를 물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둘 사이가 어떻게 전개되든지 간에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강단을 기르기를 아비는 제발 바란다. 그걸 잘 못해 참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아비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눈물 많고 마음 여린 막내딸에게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