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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아닌 지인이라면

by 김대일

'케빈 베이컨 게임'이라고 들어봤을 게다. '6단계 법칙( The Six Degrees of Kevin Bacon)'을 응용해 영화에 함께 출연한 관계를 1단계라고 보았을 때 다른 할리우드 배우들이 케빈 베이컨과 몇 단계 만에 연결될 수 있는지를 맞히는 게임이다. 예를 들어, 로버트 레드퍼드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메릴 스트립과 함께 주연을 맡았고, 메릴 스트립은 케빈 베이컨과 <리버 와일드>에 함께 출연했으므로, 로버트 레드퍼드는 케빈 베이컨과 두 단계 만에 연결이 되는 것이다. 또 줄리아 로버츠는 덴절 워싱턴과 <펠리칸 브리프>를 함께 찍었고, 덴절 워싱턴은 톰 행크스와 <필라델피아>에 출연했으며, 톰 행크스는 케빈 베이컨과 <아폴로 13호>에 함께 출연했으니, 줄리아 로버츠는 세 단계 만에 케빈 베이컨에 도달하게 된다는 식이다.

여섯 다리만 건너면 지구상 대부분의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는 6단계 법칙( The Six Degrees of Kevin Bacon)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일상화된 요즘에는 옛날 얘기처럼 느껴진다. ‘여섯 다리’가 아니라 ‘서너 다리’만 건너면 다 알고 통하는 사이로 엮인 ‘좁은 세상’이 됐다는 조사 결과를 보면 말이다. 실제 한국인의 ‘사회연결망’을 조사했더니 3.6 단계만 건너면 아는 사람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생면부지라고 푸대접했다가 우세 사기 십상인 세상이 됐다는 소리겠다.

<타인과 지인의 사이에서>라는 칼럼(이은희 과학저술가, 경향신문, 2022.04.14.)은 타인을 한두 혹은 서너 다리만 건너면 아는 지인이라고 상정한다면 우리가 겪는 갈등의 상당수가 사라질 것이라는 요지로 마치 '케빈 베이컨 게임'을 윤리적으로 풀어쓴 듯하다. 요약하면 이렇다.

​새싹이 씨앗을 맺고 다른 생명의 양분이 된 뒤 흙으로 돌아가지만 사라지는 건 아니다. 다른 씨앗으로, 다른 생명으로,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그렇게 세상만물은 모였다 흩어지면서 끊임없이 이어진다.

자연의 근본적인 원리가 연결, 순환이라면 파편적이고 자연과 유리되어 사는 게 익숙해진 우리는 대상이 무엇이든 나와 상관없다고 여기면 잔인해지곤 한다.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을 노예로 삼아 학대하고, 단지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수백만 명을 가스실로 보냈던 비극은 오래된 역사가 아니다. 인간의 타자화는 자신과 상대를 완전히 다른 존재로 규정해 차별과 공격과 착취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상대가 내가 아는 사람, 즉 지인이라고 여긴다면 공격성은 누그러지고 좀 더 나은 관계를 위한 모색에 들어간다.

진실은 고립적인 나, 분절된 나로 보는 인식과는 별개로 우리는 대개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지역, 성별, 세대, 사회경제적 위치, 신체상의 특징 등을 들어 공고한 차이를 드러내려 꾀하지만 사실 그다지 뚜렷한 타자화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이동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 살고 있고, 장애를 가질 수도 이를 극복할 수도 있으며, 나이든 이들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으며 젊은 세대도 언젠가 다음 세대와 마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성별은 뚜렷하게 나뉠지 몰라도 이성이 없으면 우리는 더 이상 다음 세대로 이어갈 수 없기 때문에 이 또한 긴밀한 관계로 엮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모두 다르고 분절된 각자의 영역 속에서만 살고 있다고 여기지만 그 어떤 이들조차 완벽하게 분절된 존재로 타자화시킬 수 없을 만큼 서로가 연관을 맺고 있다. 타인이 아닌 긴밀한 관계로 연결된 지인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관점의 변화만으로도 우리를 괴롭히는 갈등의 상당수는 사라질 것이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처음 본 당신조차 연결다리를 건너고 건너다 보면 긴밀한 관계로 연결된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아는 지인일 수 있으니 결단코 박대해서는 안 된다는 게 오늘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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