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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늦어도 11시까진 잠자리에 들어 5시 15분 전에는 깨야 한다. 새벽같이 약대 편입 학원 갈 큰딸 때문에(화장실 하나뿐인 우리집) 아침 볼일을 가급적 빨리 마쳐야 해서다. 아침 잠이 없는 편이지만 개업하고부터는 기상이 좀 버겁다.

잘 자는 것도 복이라고 하면 베개에 머리만 댔다 하면 잠이 들어버리는 근자의 나는 복에 겨워 덩실덩실 춤이라도 춰야 하겠지만 자고 일어나도 영 개운치가 않은 몸뚱아리는 덧없는 세월을 탓해야 하나 몇 푼 벌겠다고 애면글면하는 장삿꾼의 업보 탓인가. 깊은 잠을 못 들어 전전반측하던 밤이 흔했던 내가 가게를 열고부터는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게 숙면을 취하게 됐으니 매상이 많건 적건 이문이 남는 장사로 칠 만하다. 문제는 숙면이 꼭 단잠은 아니라는 데 있다. 해우소 큰일 보고 뒤 안 닦은 양 찝찝하고 섭섭한 기분은 가게로 향하는 아침 전철 간에서까지 주욱 이어진다. 전철이든 버스든 이동 간에는 눈을 감지 않는다는 혼자만의 계율이 깨어진 지 좀 됐다. 책을 펴 한 단락이나 읽었으려나, 스르르 고개가 떨구어지더니 까무룩 선잠이 드는 나를 달리는 전철 간 천장에서 조망하는 듯한 낌새를 한두 번 겪은 게 아니다. 조는 건 인생을 낭비하는 태만이라며 꾸짖는 측과 일이십 분만이라도 모자란 잠을 보충하겠다며 우기는 측의 치열한 쟁투는 이미 일상이 되어 버렸다. 노동이 육체를 조종하는 건전한 쾌감은 반길 만하지만 이성이라는 고집 센 녀석을 살살 달래는 수고를 들여야 덜 속시끄러울 텐데 조는지 마는지 몽롱한 정신머리로 개찰구를 나와 가게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누구나 잠은 애증의 대상이다. 일정한 수면이 사람을 활성화시키기는 하지만 하루의 삼분지 일을 잠으로 날리는 게 백 년도 채 안 되는 인간의 수명에 비추어 과연 합리적인가 하면 나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뭔가 그럴싸한 이유나 명분이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자는 시간이 아까워서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던 나는 불과 한 달 전부터 심신의 강도가 몇 배는 세진 노동이 개입되면서 점점 잠의 유혹에 쉽게 빠져 버린다. 반쯤 내리덮은 눈꺼풀을 하고 이불 속으로 기어드는 순간까지 이 밤을 잠으로 다 날려버릴 거냐며 각성을 촉구하지만 아니 자면 혹은 덜 자면 내일이 고단하고 고달플 게 뻔하다는 두려움이 더 크게 나를 자극하고 만다.

오늘은 화요일, 일주일에 한 번 뿐인 휴일이다. 개업하고부터 버릇이 생겼다. 한 달쯤 됐다. 막걸리 반주를 겸한 느지막한 점심을 혼자서 느릿느릿 때운 뒤 곧장 잠자리에 든다. 일주일치 밀린 잠을 보상받기라도 하겠다는 듯 전투적으로 잔다. 이런 내가 즉물적이지만 일이 완전히 몸에 익기 전까지는 어쩌지 못하겠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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