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와 단둘이 일요일 늦은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큰딸은 귀가 전이었고 막내딸은 초저녁에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밉든 곱든 서방이랑 밥숟가락 뜰 요량으로 기다려 주는 마누라가 그저 고맙다).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제주를 배경으로 저마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아낸 드라마를 보는데 마누라가 "저 노래 옛날에 당신 컬러링 아니었나?" 묻는다. 가만 들어보니 가수만 다르지 노래는 맞다. 마이클 부블레Michael Bublé가 넬리 퍼타도Nelly Furtado와 듀엣으로 리메이크한 <Quando, Quando, Quando>가 십이삼 년 전 내 컬러링이었다.
아주 오래됐는데 마누라가 여태 기억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 듣기 싫었었나 보다. 그 당시 마누라한테서 전화가 오면 일성이 '컬러링 좀 바꿀 순 없어?'였으니까. 꼭 그 노래뿐이었으랴. 그 전 컬러링이었던 <Something Stupid>(Robbie Williams & Nicole Kidman)도 청승맞다며 어찌나 구박을 해대던지 원. 마누라와 나의 음악적 취향은 극과 극이다. 신나고 빠른 비트를 선호하는 마누라가 감미롭긴 하나 처지기 일쑤인 재즈풍 노래를 좋아하는 나를 곱게 봐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가족들이 다함께 노래방 가길 소원한다고 십수 년째 애걸복걸해도 내가 요지부동인 건 꽉 막힌 공간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댄스곡으로 일관할 그 한두 시간을 견딜 엄두가 안 나서다. 안 가는 게 아니고 못 가는 게 솔직한 내 답변이겠다. 그런 마누라와 음악적으로 접점을 찾는다는 건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일만큼이나 불가능하다.
헌데 '꽌도' 소리만 들어도 경기하듯 몸서리까지 치던 여자가 가만히 듣고만 있다. 노래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는 이유가 뭘지 마누라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생각해봤다. 노래가 드라마 장면과 기가 막히게 어울려 노래 평을 늘어놓을 염조차 안 들거나, 일하고 와서 늦은 밥 먹는 서방을 위해서 취향에 안 맞는 노래가 나오지만 꾹 참는 거, 둘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암만 후하게 쳐도 첫째 이유가 가장 그럴싸하긴 한데(노래가 제주 밤바다와 찰떡 궁합이었다. 누가 했는지 선곡 한 번 잘했다), 만약 후자라면 마누라 기특해서 볼에다 뽀뽀라도 해줄 판이다. 부부는 살면서 서로 닮는다지만 우리 부부라면 예외인 게 음악적 취향이고 보면 밥이라도 편하게 먹일 작정으로 듣기 싫은 노래 참아가며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닮는 것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셈이다. 그게 되우 고마워서 마누라 해준 쑥국 두 그릇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비웠는데 잘 밤에 그리 먹으니까 배가 더 나온다며 결국 지청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