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현이라는 승명을 가진 스님이 쓴 칼럼에서 파가 불교에서 금지식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매운맛이 나고 향이 강한 파·마늘·부추·달래·흥거 따위를 오신채라고 해서 불교에서는 식재료로 금한 모양이다. 인도가 불교 발원지이면서 향신료의 나라로 유명하다는 건 누구나 안다. 불교가 한반도로 전파될 때 인도의 향신료 문화까지 우리에게 일부 이식되었다고 가정한다면(필자는 생강을 얇게 썰어 절인 편강을 씹곤 하던 예전 어른들을 예로 들었다), 오신채가 금지식인 이유가 정력을 돋우는 음식이므로 독신 수행자에게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건 인도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잘못된 주장이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왜 불교에서는 향신료를 금지식으로 정했는지 필자가 내놓은 이유 두 가지를 들어보자.
첫째는 맛에 대한 탐착이다. 수행자가 특정 맛을 선호하는 것은 집착을 넘어서려는 불교의 목적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둘째, 향신료는 호불호가 갈리므로 싫어하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불교 승단은 군대와 같은 집단생활을 기본으로 한다. 단체생활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 섭취는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명상을 위해, 정신을 집중하는 예민한 상태에서라면 더욱 심각해질 소지가 있다.(<자현의 아제아제바라아제-절에서는 왜 파를 안 먹을까>, 한국일보, 2022.04.21.)
밥 먹고 나면 으레 양치질하기 마련인 요즘이니 오신채가 들어간 사찰음식을 용인하는 게 시류에 맞지 않겠느냐고 능청을 떨며 칼럼은 끝난다.
종교적 신념 말고도 개인적인 사정에서 기인한 금지식이 없지 않다. 이를테면 강건할 때는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탐닉하더니 병을 앓은 뒤 구병 차원에서 멀리해야 할 음식 리스트에 떠억 하니 그 이름이 올라가면 안타깝지만 그길로 절연해야 한다. 식도락이 인생의 낙인 자들한테는 그런 비극도 없다. 육체적 안녕을 위해서라지만 먹고 싶은데 못 먹어 자심한 정신적 피폐를 어찌 감당할꼬. 평소 건강 관리에 신경써야 하는 게 잘 먹고 많이 먹기 위해서라면 이유 같지 않은 이유일까.
흉물스럽게 축 처진 아랫배가 영 눈에 거슬리는데다 위장까지 시원찮다는 의사 판정을 듣고부터 마누라 잔소리 강도는 더 세졌다. 운동해라, 먹고 바로 눕지 마라 따위야 어떻게든 참고 넘어가겠지만 건강에 해롭다는 멍에를 씌워서는 먹고 마시는 것까지 간섭이 심해지면 괜히 몰래 숨어서라도 먹고 마시려는 청개구리 심보가 더 발동한다. 몸져 누워봐야 정신이 차리지 하는 핀잔이 어김없이 돌아오지만 아, 순순히 포기하기에는 먹고 마시는 행복에 진심인데 이런 나를 어찌 하오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