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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일요일(44)

by 김대일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이 시를 읽을 적마다 드는 비감은 헌신적인 사랑과 애절한 그리움의 정서를 두고 나는 왜 이리 더럽게 슬픈 건지, 나같은 찌질이들이 슬퍼할 줄 뻔히 알면서 시 제목은 왜 '즐거운 편지'라는 써놨느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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