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블루스>의 기획 의도가 힐링 드라마를 표방하는 거라면 제주도를 배경으로 내세움으로써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얼마나 대단한 필력의 소유자인지 나로서는 가늠이 안 되는 작가를 믿고 드라마에 참여한 기라성 같은 배우들의 호연에 비해 세대 별 사랑을 그린 에피소드들은 하나같이 알맹이도 감동도 없이 밋밋하고 밍밍하기 이를 데 없다. 오로지 출연진들 간판빨에 기대 시청률을 구걸하는 듯한 드라마를 보면 안타까움을 넘어 처연하기까지 하다. 그 와중에 결혼하지 않은 고교생의 임신을 소재로 한 에피소드는 이야기다운 이야기도 못 풀어내는 작가가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까지 탑재하면 어떻게 망가지는지 여실하게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겠다. 결론은 안 봐도 뻔하다. 출산에 맞춰 앙숙이었던 남녀의 아버지들 간에 화해가 이뤄지고 주인공들을 둘러싼 공동체의 따뜻한 관심 아래 아기는 무럭무럭 잘 자랄 거라는 해피엔딩은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는 진부함이다. 그래서 청소년의 원치 않는 임신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나는. 더군다나 임신 중단을 강행하려는 여자 주인공을 독한 년으로, 임신 중단을 집요하고도 간접적으로 방해하는 남자 주인공을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사람으로 그려내 갈등을 고조시키는 구조가 '몸 간수 제대로 못한' 어린 여자가 응징당하는 게 싸다는 구시대적 발상이라고밖에는 읽혀지지 않아 불편했고 볼썽사나웠다. 이 드라마에 관한 품평 둘을 발췌해 옮긴다. 딱 내 생각이다.
한국 사회는 강력한 정상·비정상 가족 이분법, 순결 이데올로기, 오랫동안 인공 임신 중단을 '죄'로 규정해온 사회문화적 배경, 모성애의 절대화가 철벽처럼 버티고 있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위해 임신 중단권을 획득하려는 길고 치열한 싸움이 있었다. 한편에서는 섹슈얼리티가 은폐되는 청소년과, 임신 중단 문제에서 죄책감을 주입하는 각종 메시지로 고통받는 여성이 존재한다. 미디어에서 재현하는 청소년의 섹슈얼리티, 임신, 출산, 자기 결정권이 좀더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 함부로 훈계하거나 비난하지 않으면서, 경악하거나 기특해하지 않으면서. '임신 중단을 하고도 잘 살아가는 선배'를 '…카더라'라는 대사 속 풍문이 아니라, 이기적이고 문란하며 충격적인 과거를 가진 독한 여자가 아니라 다양한 욕망과 서사를 지녔으며 작품 속에서 충분히 수용되는 인물로 만나고 싶다.(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의 아니 근데-tvN '우리들의 블루스'가 청소년 임신을 바라보는 낡은 관점>, 경향신문, 2022.04.30.)
여자에게 돈을 빌려야 하는 아버지, 과거 많은 여자를 품은 연하남, 필요할 때만 내게 기대는 여자를 짝사랑하는 남자, 낙태하려는 여자 곁에서 '내 아이'를 꿈꾸는 소년, 홀로 아이를 키워온 아비 등 드라마에는 여자에 대한 순정을 품은 남자들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하다. 여자는? 잘났지만 사랑을 모르는 '헛똑똑이'들이다. 불현듯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작가의 책 제목이 떠오른다. 사랑을 믿지도, 남자를 연민하지도 않는 '요즘 여자들'을 향한 노 작가의 시대착오적 엄포로 들린다.(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황진미의 TV 새로고침-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한겨레, 2022.04.30.)
2.
대통령 당선자가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등장했을 때 굳은 표정을 한 유재석을 두고 설왕설래다. 본방 사수하는 유일한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회차는 재방송도 안 본다. 돼먹잖은 정치 선전 듣자고 <유 퀴즈>를 시청하는 건 아니라서. 아무튼 한편에서는 유재석의 표정을 문제 삼으며 그의 정치색을 추측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유재석마저 불편해하는 당선자'를 강조하려 드는데 정작 유재석이나 <유 퀴즈> 제작진은 침묵을 지킬 뿐이다. <유 퀴즈> 쩍벌남 방송분에서 노출된 유재석의 굳은 표정이 과연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유재석이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였던 표정을 두고 추론하는 칼럼의 한 대목을 옮긴다. 과연 비슷한지 뒤져봐야겠다.
유재석의 심정을 간접적이나마 추론할 수 있는 방법은 그가 어떠한 또 다른 상황에서 그와 같은 넋 나간 듯한 표정을 보였는지를 찾아보는 것일 테다. 프로 방송인답게 그러한 표정을 드러낸 방송이 많지 않아서 찾기 어렵다. 내가 찾아낸 건 이거다. <무한도전>의 어느 회차에서 유재석은 게스트로 출연한 코미디언 김영철에게 이상형이 누구냐고 물었다. 김영철이 배우 신민아라고 말했을 때, 대답을 들은 당시 유재석의 표정이 이번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윤 당선자를 만났을 때 지은 표정과 매우 비슷했다.(김내훈 미디어문화 연구자, <김내훈의 속도 조절-윤석열 '유퀴즈' 출연 논란 2제 ①>, 한겨레. 2022.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