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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이 따로 없다

by 김대일

개업 축하 선물로 받은 화분은 세 개다. 마누라 고향 친구들이 보낸 금전초, 하나뿐인 처제가 형부 응원한다며 보낸 고무나무, 화분 보내면 절교라고 문자로 을러댔건만 당사자인 나보다 더 개업에 들뜬 3년차 사회복지 공무원 K가 보낸 산세베리아.

이 한 몸 건사하기도 버거워 가족 말고 '반려'라는 글자 들어간 생물이면 뭐가 됐든 얼씬도 못하게 하는 성미에 거추장스러운 화분은 말해 뭣하겠나(석연화라 불리는 다육이를 분양받아 집 베란다에 방치한 지 햇수로 사 년째다. 마음 내키면 물 한 컵 적셔주는 게 다지만 동화 <잭과 콩나무>의 콩나무처럼 알아서 쑥쑥 자라 위층 베란다를 뚫을 기세다. 여기서 방점은 제가 알아서, 즉 '자유방임'이다. 그러니 내가 그 녀석만은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원치 않는 동거 중에 시드럭부드럭하다 행여 말라 죽기라도 하면 애꿎은 생물 방기한 천하의 몹쓸 사람이란 원망을 감당할 엄두가 안 나 극구 사양했는데도 부득부득 보내는 그 심사가 도대체 뭔지 몹시 궁금하다.

손이 별로 안 가는 종이라고들 해서 한동안 정말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관상만 일삼았다. 그러다 서너 주 전부터 그 이름 한 번 물질만능주의적인 금전초 잎들이 썩어 문드러지지 않으면 줄기가 숭숭 뽑혀 나가는 게 아닌가. 이대로 내버려뒀다가는 남아날 게 없을 성싶어 갑자기 애가 탔다. 하필이면 금전초라서 더 그랬다. 어렵사리 가게를 연 친구 남편이 가리늦게나마 재물운이 트여 그간 애옥했던 살림 제발 펴지라는 기원을 담아 하고많은 화초 중에 금전초라 이름붙인 것을 부러 보내왔건만 두 달이 채 안 가 시르죽었다는 비보를 들으면 자기들 성의를 무시해도 유만부동이라고 드잡이해도 할 말이 없다. 그보다 더 상상하기 싫은 건,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먼 고향에서 애달파 일껏 보낸 화초 하나 간수 못하는 주제에 장사치 노릇은 유다를까 단단히 꼬투리 잡은 마누라 등쌀이야말로 그 자체로 공포다. 무엇보다 내가 어수선산란한 까닭은 일명 돈나무라 일컫는 금전초의 속설, 즉 잘 키우면 돈 많이 번다는 기대를 거스르는 내 무관심과 무심함 탓에 명만 재촉했다고 화초의 정령이 노해 행여 동티라도 나는 건 아닌지 적잖이 찝찝하기 때문이다.

금전초에 이상 징후를 포착한 뒤로 볕이 좋다 싶으면 무조건 가게 뒷마당 양지바른 곳에다 화분 세 개를 나란히 옮겨서 일광욕을 실컷 즐기게 한다. 가뜩이나 북향인 가게에 볕 들 날이 없어 늦봄 초여름 길목이라는 5월로 접어들었음에도 가게 곳곳에는 으슬으슬한 한기가 똬리를 틀어 뼈마디가 쑤실 지경인데 녀석들은 오죽했을까. 어쨌든 화초 간수 못해 벌어질 사달에 지레 겁먹은 나는 손님 아니 드는 틈틈이 애지중지 지극정성 살피는 것으로 태세를 확 전환했는데, 새 잎 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제발 무탈하게 이대로만 주욱 있어만 줘도 감개가 무량하겠다. 상전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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