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리 궁상은 혼자 다 떠는 주제에 초밥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그렇다고 한 접시에 기천 원씩 주고 사 먹자면 그건 또 곧 죽어도 못 할 짓이어서 회전초밥 무한리필 가게를 수소문해 제한시간까지 죽치고 앉아 배가 터지기 직전까지 쑤셔 넣는 걸로 식탐을 채우는 질보다 양을 선호하는 싼티를 시전한다. 먹지 않고는 못 배기게 초밥이 땡기면 전날 저녁부터 속을 깨끗하게 비우는 단식을 감행한 뒤 기장 부근 대형 아울렛 안에 입점해 있던 '스시오~'로 시작하는 프랜차이즈 회전초밥 가게를 찾곤 했는데 퇴점한 지 오래됐다. 이후로 비슷한 류의 가게가 근동에서는 씨가 말라서 내 구미에 맞는 회전초밥 무한리필 가게를 찾자면 서면, 연산동, 남포동, 덕천동으로 해운대에서 산 넘고 강 건너는 수고를 들여야 하는 원정 외식이 되어 버렸다.
그냥 초밥도 아니고 굳이 회전초밥이라고 꼭 집어 밝히는 데는 회전 레일 돌아가는 풍경에 깃든 오래된 추억이 한몫 거들기 때문이다. 강원도 원통에서 중위로 전역한 때가 1997년 6월 30일, 서울 강남구 뱅뱅사거리 근처에 본사를 둔 아무개 생명보험회사에 입사한 건 바로 다음 날인 7월 1일이었다. 연수를 마치고 배치받은 곳은 고향인 부산의 지점이 아니고 본사의 기업 대상 영업부서였다. 본사에서 근무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을 안 했던 나로서는 느닷없는 서울 입성이 충격이었고 그 여파인지 전역 후 곧장 입사의 후유증은 의외로 심했고 오래갔다. 강원도 오지에서 이 년 넘도록 처박혀 살다 보니 세상 물정이 어두웠다. 전역 이후의 삶을 구체적으로 구상하기도 전에 엉겁결에 시작한 서울생활은 하루하루가 막막했고 지리멸렬했다. 당장 사표 쓰고 낙향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던 나를 다잡아준 이들은 같은 부서에 발령받은 입사 동기인 동규와 용호였다.
동규, 용호, 나 이렇게 셋은 하루 일과를 마치면 습관처럼 들르는 곳이 있었다. 본사 건물 맞은편 빌딩 숲 사이에 꼭꼭 숨어 있던 회전초밥 가게에서 저녁 겸 한 잔 걸치는 게 우리의 일상이었다. 명색이 금융회사 직원이었지만 타 회사 동급보다 훨씬 열악한 급여를 받는 처지로 주머니 사정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가난한 신입사원들한테는 구세주 같던 가게였다. 셋이서 술추렴하면 알맞게 취할 만큼 마실 수 있었으니 저비용 고효율로는 최고였고 우리의 아지트로는 당연히 적격이었다. 열 평이 채 될락 말락 조붓한 실내에는 회전 레일이 앙증맞게 돌았고 빽빽하게 들앉으면 여덟 명은 좋이 수용 가능한 자리가 단체석이랍시고 홀 가장자리에 떠억 버틴 그 곳에서 우리는 숱한 밤을 즐겼다. 대구 출신이지만 대학을 서울서 다닌 동규, 서울 토박이인 용호는 서울이란 도시에 쉽사리 스며들지 못하는 나를 위해 길라잡이 역할을 자청했고 그 녀석들 덕에 눈을 떠도 코 베어 갈 만치 고약하고 정나미 떨어지는 서울이란 곳에 발 붙이고 살 엄두가 차츰 생기긴 했다.
같은 부서의 비슷한 또래들이 저녁에 모여 나누는 대화란 의외로 실리적이고 흥미진진했다. 각자 맡은 업무를 공유하거나 하다못해 상사 뒷담화는 하루라도 빨리 신입 딱지를 떼어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고 각자의 연애 한담에도 귀를 기울였던 건 결혼 적령기에 바짝 다가선 사내들이 당면할 인생 이벤트에서 소중한 귀감으로 작용할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기껏해야 스물 예닐곱밖에 안 된 사내들의 수다는 회전초밥 가게의 공간을 가득 메우고도 남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를 주고받는 멋진 의기투합이었다.
프랜차이즈 회전초밥 무한리필 가게의 긴 회전 레일을 바라볼 때면 초밥 접시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별일 아닌데도 웃고 떠들던 그 시절 신입사원들이 불현듯 떠오른다. 회전초밥 무한리필 가게에서 내가 먹은 건 초밥이 아니라 어쩌면 그리움일지 모르겠다.
사족 - 동규는 양산에 산다. 동규 와이프는 여전히 아프다. 동규만큼 애환 많은 녀석도 없다. 녀석에 관한 글을 언제고 꼭 쓰고 싶다. 물론 동규의 허락을 먼저 받아야겠지만. 용호는 외국계 생명보험사에서 부장으로 꿋꿋하게 잘 지낸댔다. 성실과 근면이 트레이드 마크인 용호는 끈질긴 생명력까지 겸비했다.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고 오래가는 놈이 강하다는 걸 여실히 증명해 보이는 녀석이다. 두 녀석이 짜장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