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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추억의 주름

by 김대일

파란색 춘추 와이셔츠를 개조한 작업복을 벗어던질 즈음 내 여름은 시작된다. 작업복에 머리카락 안 끼게 팔뚝까지 오는 토시를 받치는데 그 속으로 땀이 자주 흥건해지면 반팔을 입을 때가 된 거다. 어린이날을 기점으로 초여름에 바짝 다가선 듯해서 입성을 가볍게 했다. 바야흐로 내 여름이 돌아왔다.

기대가 큰 여름이다. 우선 다른 계절에 비해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니까 매상 오를 개연성이 커진다. 더운 날이 이어지는데 더벅머리를 고수하는 건 자기 자신은 물론 타인한테도 시각적으로 고통스러우니까. 한 번 깎을 거 두 번 깎게 부추기는 계절이 여름이다.

아침저녁으로 몸이 한결 가벼울 거이다. 엄동에는 돌덩이를 이고 사는 것처럼 무거웠던 몸뚱아리였다. 늦게 동이 트는 아침, 해가 일찍 떨어지는 저녁으로 생체 리듬의 오작동이 빈번해 부대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이 든 건 못 속이는지 떨어진 기온에 잔뜩 옹송그린 나는 어딜 가나 온기만은 갈구했다. 그러니 알맞게 쾌적하고 따뜻한 여름 조석 공기가 나를 진작시킬 거이다. 거기에 기대 운동이라는 것도 해볼 요량이다.

생동감 넘치기로는 봄보다 여름이라고 우기는 나는 이 계절이면 항상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가 누구인지 특정할 수는 없지만 기다리는 마음이 들 정도면 꽤 호감이 가는 인물임에는 틀림없겠다(그런 상대는 과연 나를 어떻게 느낄 것인가는 안 물어봐서 잘 모르니 일단 차치하기로 하고). 운이 좋아 해후하면 더할 나위 없고 이 좋은 계절에 못 만난다손 기다리는 그 자체만으로 나는 한껏 들뜬 마음으로 여름날을 만끽할 수 있어서 좋다.

여름은 기분좋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상상을 부추기기에 알맞은 마성을 지닌 계절이다. 그래서 여름은 또한 추억쌓기 좋은 계절이다. 내 기억의 주름 속에 올 여름의 추억 하나 깊이 새겨졌음 좋겠다. 사람이든 돈이든 뭐가 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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