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경차를 밴 삼아

by 김대일

한 오 년 전쯤 물욕으로 가득한 내 버킷리스트를 게시글이랍시고 올린 적이 있었다. 룸펜으로 쭈그렁바가지 신세를 못 면하던 차에 돈 안 들고 기분이나 내보자는 심산이었을 게다.


하나, 쉐보레 익스플로러 밴 구입하기

둘, 내 이름자 박힌 책 내기

셋, 세상의 이름난 냉면집 찾아다니면서 맛보기

넷, 맘모니즘 손때가 더 타기 전에 쿠바 여행하기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게 많았겠지만 그 당시 가장 집중했던 관심사를 버킷리스트로 둔갑시켜 두서없이 밝힌 셈인데, 오 년이 지난 지금 넷 중에 이루어진 거라곤 '내 이름자 박힌 책 내기'가 유일하다. 물론 나머지 것들은 내 처지나 주머니 사정으로 봐서는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지만 꿈은 이루라고 꾸는 것이고 설령 이루지 못할지라도 근접하기 위해 아등바등할 때의 뿌듯함이 이루지 못한 낙담보다 분명 더 나를 고양시킬 테니 버킷리스트는 파기하지 않고 존속시키기로 한다. 그건 그렇고 하필이면 왜 쉐보레 익스플로러 밴이냐고 궁금해할 분들을 위해 당시 글 일부를 옮겨 보겠다.


유난히 물욕이 동하는 건 차다. 그렇다고 내가 차 애호가는 아니다. 그저 큰 차, 가족들이랑 편하게 세상 유람할 수 있는 큰 차를 예전부터 갖고 싶었다. 그 놈의 캐시가 늘 문제지만. 한때 드라마에서 맡은 배역 이름만 대도 그 유명세가 짝자그르했던 탤런트가 사위만 일곱인 내 처가의 맏사위인데 헛바람만 잔뜩 들었던 십수 년 전에 집채만 한 차를 끌고 와서는 충북 음성 시골 바닥을 휘젓고 다니길래 뭔 놈의 차가 느자구없이 크냐고 시샘 반 감탄 반 씨부렁거리다가 결국 차 구경 좀 시켜 달라고 졸랐다. 차 안으로 막 들어서는 순간, 그 전까지 내가 가졌던 차에 대한 고정관념이 여지없이 깨져 버리고 말았다. 차에서 두 발 쭉 뻗고 잘 수도 있구나! 물론 덩치에 맞게 운신하자면 녀석 밑으로 기름깨나 들겠지만 차가 내뿜는 아우라에 부응하자면 그 정도 출혈은 감수하는 게 맞다고 역성을 들기에 이르렀다.

쉐보레라는 브랜드로 밴이 유명하대서 막 뒤졌더니 스타크래프트니 익스플로러니 하는 모델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그때 보고 홀딱 반한 차가 익스플로러 밴이었지 싶다. 미국 영화에서나 가끔 등장하는 카라반도 나쁘지는 않지만 구미가 썩 당기진 않는다. 오로지 쉐보레 익스플로러 밴에만 눈이 뒤집힌 나다. 그 녀석만큼 매력을 못 느껴서기도 하지만 번거롭고 귀찮은 짓이라면 돈을 가마니로 들고 와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고약한 습성의 소유자는 캠핑카가 되레 애물단지다. 운전하다 피곤하면 뒷칸으로 넘어가 발 뻗고 자고, 배고프면 식당 들러 사먹으면 되는 일이지 왜 해먹어? 운전하는 게 지겨워지면 한적한 국도 샛길 어디쯤 세워 두고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느긋한 게으름을 즐길 수 있는 차. 그런 차가 진정한 내 로망이자 쉐보레 익스플로러밴을 대하는 내 어처구니없는 자세다.(2017.10.02.)


​ 마누라와 막역하게 지내는 지인이 신차 뽑는다고 자기가 타던 경차(모닝)를 싼값에 넘겼다. 전 차주가 워낙 꼼꼼하게 차 관리를 잘한 덕에 상태가 거의 신차급이어서 마누라 계 탔다고 싱글벙글이다. 주말마다 도로연수니 뭐니 해서 부산을 떨게 틀림없다. 마누라 명의로 자동차 등록 하고 보험도 넣었으니 마누라 자가용인 게 분명한데도 자동차 검사는 나보고 받으란다. 그것도 내가 노는 날에 말이다. 종합검사비 48,000원까지 내 돈으로 지불하고 다음주 화요일(5/17)로 검사 예약을 잡았다. 올해 안에 기필코 장롱 면허 딱지를 떼겠다 투지를 불사르는 마누라를 응원하지만 솔직히 반신반의다. 두 해 전 도로주행 연수를 도와주는 게 아니었는데 그때 생긴 트라우마가 꽤 오래간다.

네 식구 다 타면 경차 안이 꽉 찬 느낌이다. 불현듯 우리 네 식구 차 몰고 여행 떠났던 게 언제였는지 떠올려 보다가 기억조차 없어 무안했다. 익스플로러 밴을 사야지만 식구들과 여행을 떠나겠다는 건 안 가겠다는 발상이나 다름없다. 경차를 밴 삼아 가까운 데라도 자주 나다니는 게 가정의 화목과 안녕을 위해서는 대단히 유익하지 싶다. 노력하겠다.

작가의 이전글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