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글을 고쳐 쓴다는 핑계로 어물쩍 하루를 제끼려는 꼼수를 숨기지는 않겠다. 뭘 써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을 때는 네 능력이 그것밖에 안 되냐며 스스로를 어찌나 구박하고 경멸해대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오늘은 정말이지 머리가 텅텅 빈 느낌을 어쩌지 못해서 다른 대안을 찾느라고 골몰했다.
'사회적 모성주의'라는 신박한 표현을 칼럼에서 발견하고는 그에 관한 내용을 써볼까 하다가 말았다. 잘 모르는 내용으로 어설프게 썼다간 안 쓰느니만 못한 꼴이 자명해서다. 호주제 폐지에 적극 앞장섰던 동물학자 최재천 교수가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유전학적 호주는 여자다'라고 설파한 걸 글감 삼아 써볼까도 궁리해봤지만 내 얕은 지식으로는 역시 역부족이라 마음뿐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예전에 썼던 글 하나가 떠올랐고 '사회적 모성주의'나 '유전학적 호주는 여자'로 염두에 둔 대강의 아우트라인과 설핏 연관이 없지 않겠다는 견강부회의 유혹에 넘어가 그것으로 아예 퉁치겠노라 마음먹었던 게다. 구구절절 더 말해본들 사람만 더 추해지니 이쯤에서 마치고 예전 글을 옮긴다.
로지(Rosie)는 우아하다(Garbo) (2018.01.24.)
한 번은 봤음 직한 포스터다. 물방울 무늬의 빨간색 반다나를 머리에 두르고 데님 셔츠를 입은 채 오른팔 근육을 드러내고 있는 여성과 그 상단에 “We Can Do It!” 이라고 선명하게 적혀 있는 포스터. 이 포스터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 여성의 경제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벌인 캠페인의 산물인데 1942년 피츠버그의 그래픽 디자이너 하워드 밀러가 그렸단다. 이름하야 ‘리벳공 로지(Rosie the Riveter)’. 리벳이란 대형 못을 박아 비행기 등 각종 철골 구조물을 연결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 리벳공이라 했고 로지는 여성의 이름이었으니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후방의 군수 공장에서 용접, 비행기 시공, 군용 차량 조립 등의 일을 하며 ‘리벳공 로지’로 불리었단다.
포스터 속 로지의 실제 모델인 나오미 파커 프랠리가 지난 20일(현지시간) 향년 96세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2018.1.24.자 경향신문은 전한다. 기사에 따르면, 리벳공 로지는 반세기 넘게 여성 노동자의 아이콘으로 소비됐지만 프랠리와 로지의 관계가 밝혀진 것은 불과 2년 전인 2016년 뉴저지의 시턴홀 대학 제임스 킴블 박사가 6년 간의 추적 끝에 포스터 속 여성이 프랠리임을 증명하면서라나.
강인한 여성성을 상징한 아이콘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는 점에 구미가 당긴 건 아니다. 프랠리가 실제 모델임이 증명되기 전까지는 미시간주 출신의 여성 호프 도일(2010년 사망)이 모델로 알려져 있었다는 가십성 기사는 더더욱 내 관심사와는 거리가 멀다. 정작 나를 두근거리게 한 내용은 다음이었다.
프랠리는 당시 주간지 피플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인기나 부를 원하지 않았다”며 수십년 간 조용히 지낸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나의 정체성을 원했다”고 했다.
1941년 갑자기 은퇴를 선언한 그레타 가르보. 가르보의 은퇴에 대해 동성 연인을 위한 것이었다는 데서부터 할리우드를 ‘공장’으로 표현할 정도로 배우 생활에 염증을 느꼈다거나 늙고 추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라는 추측까지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짤막한 일대기 형태로 그레타 가르보에 관해 쓴 2017.12.30.자 한겨레 기사에서 불현듯 리벳공 로지란 페르소나에 연연하지 않았던 프랠리의 목소리를 다시 발견한다.
하지만 1941년 <두 얼굴의 여자Two-Faced Woman>가 흥행에 실패하자 갑자기 은퇴를 선언했다. 그 뒤로는 잘 알려져 있듯 50년을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비혼으로 살았다. 마치 그가 <그랜드 호텔>에서 읊조렸던 대사 “혼자 있고 싶어요”처럼. (…) 악의적이고 저급한 루머에서 평생 ‘여배우’라는 신화적 이미지에 갇혀 그가 느꼈을 고독이 그려진다.
속물적 영욕 대신 고독을 선택한 두 여자. 그 고독으로 해서 우아한 sein을 증명해 보인 프랠리와 가르보. “다만 나의 정체성을 원했다”란 일성은 침묵으로 일관했던 가르보가 프랠리를 통해 세상에 던지고 싶었던 절규였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