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 공동체
김승희
비누를 보면 얼굴이 떠올라
그 비누를 사용하던 얼굴
비누 거품을 문지르면서 눈이 쓰라려 웃는 것처럼 찡그리던 얼굴
가족은 비누를 같이 쓰는 비누 공동체
비누칠을 할 때는 처음엔 누구나 얼굴이 웃고 있지
참 오만방자, 건방지게 살기도 했는데
비누 거품은 간지럽다가
눈에 들어가면 쓰라려서 눈을 감게 되지
비누 거품이 눈에 들어가면
거만과 위엄이 다 소용 없어
두 눈을 감고 쓰라리게 아픔과 양심을 생각하게 되지
가족은 비누를 같이 쓰던 비누 공동체
소멸의 비누
어제는 비누방울을 불며 같이 웃고 놀았는데
비누 거품처럼 흔적도 없이 어디로 헤어져 갔네
("무엇을 볼 때 가장 가족이 생각납니까?" 라는 질문에 시인은 첫 번째로 음식을 떠올린다. 음식 다음으로 가족을 생각나게 하는 게 비누란다. 비누는 가족들이 함께 사용하는 것이고 비누의 살결에 가족 각자의 지문과 체온이 묻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나. 가족은 음식 공동체 못지않게 비누 공동체라고 시인은 정의한다.
가정의 달이라는 5월, 향기를 주고 사라지는 비누 거품처럼 화사하지만 허전한 풍경. 시인의 착상이 기발하지만 엘레지처럼 왠지 비감한 시다.
* <김승희의 시심연심> 참고, 경향신문, 2022.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