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을 한껏 부린 장년의 부부가 들어왔다. 머리 깎는 남편 뒤에 앉아서 가게 여기저기를 훑어보다가 뭔가를 발견한 듯한 아내가 커트가 끝나면 두피마사지도 부탁한다고 선주문했다. 두피마사지하고 머리를 행군 뒤 샴푸보를 막 거두려는데 자기도 두피마사지를 받아야겠다며 아내인 분 헌걸차게 의자에 걸터앉는다. 마사지야 어렵지 않은데 샴푸 후에 여자 머리 손질은 해본 적 없다고 난색을 표하자 어차피 곧장 집에 갈 거니까 개의치 말랬다.
3분 남짓 걸리는 마사지를 받는 중에 연신 시원하다는 둥 침침하던 차에 눈이 맑아졌다는 둥 상찬을 늘어놓는데 기분 나쁠 리 없는 나다. 남편 커트와 부부 두피마사지 값으로 만 천 원(커트는 오천 원, 두피마사지는 삼천 원씩 두 명이니까 육천 원)에 팁 천 원까지 덤으로 얹어주면서 남편 머리 깎을 때마다 따라와 두피마사지 받겠노라는 포부까지 밝히니 이쁜 짓만 골라서 하는 커플이다.
가게를 나서면서 출출하다며 그들이 들어간 곳은 내 점방 바로 옆 국수가게였고 그들이 입장하고 한 십 분쯤 지났을까 사이좋게 지내는 국수가게 여자 사장님이 백발을 한 노령의 여자분을 데리고 들어왔다. 자기 숙모라고 할머니를 소개한 뒤 삼천 원을 건네주면서 두피마사지를 부탁했다. 하도 침이 마르도록 손님들이 자랑을 하길래 마침 가게 찾은 숙모를 데려왔다는 거였다. 두피마사지 뒤에 샴푸를 해야 한다는 내 주의사항에 숙모는 미장원도 아니고 남자 커트점에서 머리 감는 게 거슥해서인지 아니면 집을 나서기 전에 매만진 머리가 아까워서인지 다음에 받겠노라 완곡하게 거절하고 질녀네로 돌아갔다. 그러고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이번에는 국수가게 여자 사장님 본인이 두피마사지를 받고 싶다며 가게로 들어왔다. 숙모 건이 미안해서인지 본인의 두뇌 혈액순환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볼일 다 보고 나갈 즈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마사지를 받아야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두피마사지는 일종의 미끼 상품이다. 요금이 암만 저렴해도 가게에 손님이 안 들어 파리만 날리면 곤란하다. 손품을 들여서라도 손님을 유치할 수 있는 미끼 상품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게 좋을 성싶어 삼천 원 하는 두피마사지를 요금표에 집어넣었다. 기실 그 요금도 싼 편이다. 다른 데서 기본 오천 원 받는 걸 이천 원씩이나 후려쳤다. 장사꾼 밑지는 장사는 안 하는 법이지만 들이는 공에 비해 턱없이 싸긴 하다. 하지만 싸니까 이점도 있다. 커트하러 들어왔다가 벽에 붙여둔 두피마사지 광고 문구를 본 손님이 '저건 뭡니까?' 흥미를 보이면 백발백중이다. 오천 원에서 팔천 원으로 매상이 올라가는 순간이고 가랑비에 옷 젖듯 쌓이면 솔찮게 짭짤하다.
마누라 말마따나 가게 연 지 두 달 남짓된 신참 주제에 매상 올리는 데 물불 가릴 계제가 아니니 성별 구분할 까닭이 없다. 꼭 주력상품이 아닌 미끼상품으로라도 매상만 올라가면 그것대로 장사 재미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근처 나많은 여성분들 사이에서 두피마사지 잘하는 집으로 입소문이 돌망정 머리 잘 깎는 집으로 자자하게 퍼지는 것보다 기술자로서 썩 듣기좋은 명성은 아니겠으나 아무려면 어떠랴. 삼천 원이 삼만 원 되고 삼만 원이 삼십만 원으로 불어 주머니 두둑해지면 그게 장삿속이지 달리 뭣이 중한디.
사족- 장년의 부부는 다음날 또 와서 두피마사지를 받았다. 게다가 남편은 내 가게에서 제일 비싼 염색약을 구입해 염색까지 하고 갔다. 부부가 이구동성으로 주위 사람들한테 두피마사지 받아보라며 선전하고 다녔다나 어쨌다나. 감질나게 한 사람씩 갈 게 아니라 열 명씩 조를 짜서 가야 커트점 사장한테 돈 된다고도 했단다. 정말 조를 짜서 찾아오는 그날은 그야말로 계 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