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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발명연구소: 이발소

by 김대일

이정록 시인이 이발사로 변신했대서 무슨 소린가 했다. 37년 교사로 일하다 지난 2월 퇴직한 시인은 충남 천안 시내의 한 아트센터 건물에 이발소를 열었단다.(한겨레 토요판, 2022.05.14.) 애들 가르치랴 시 쓰랴 바빴을 텐데 언제 이발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나, 연금으로는 빠듯할 남모를 사연 때문에 퇴직하고도 다른 때꺼리를 물색한 건지, 공공연하게 글 쓰는 이발사 소릴 듣고픈 입장에서 기성 시인이 이발소를 열었대서 주눅이 들고 김까지 새 버린 나다.

근데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니 이발소가 그 이발소가 아닌 게야. '이정록 시인의 이발소: 이야기발명연구소'가 그 공간의 이름인데 줄여서 이발소라고 한 게다. 한술 더 떠 시인은 새로 판 명함에 '깎사'라는 은어가 적힌 직함까지 내걸었단다. 한 마디로 말장난인 셈이다. 휴~~

이정록 시인이 누구인지 금시초문인 분을 위해 소개하자면, 내가 일주일 중 하루는 글 올리는 수고를 덜어보려고 일요일만은 남의 시로 갈음하는 꼼수를 부린 지가 그제로 마흔일곱 번째 주를 넘겼는데 그 중 아홉 번째 주(2021.08.22.) 시가 이정록 시인의 <청양행 버스기사와 할머니의 독한 농담>이고 열일곱 번째 주(2021.10.17.) 시가 역시 이정록 시인의 <짐(어머니학교 6)>이었다. <청양행 ~> 시가 나한테 얼마나 센세이셔널했냐면 시를 읊고 난 뒤 부연한 글에 이문구 선생의 소설「우리동네 김씨」의 한 대목을 덧붙일 만큼 구성지고 의뭉스러운 충청도 사투리에 완전 매료됐다. 말 나온 김에 <청양행~> 시와 이문구 선생의 「우리동네 김씨」의 한 대목을 소가 되새김질하듯 다시 꺼내 읊어 보고자 한다. 이정록 시인의 신작 시집 『그럴 때가 있다』에는 예의 시골 버스 기사와 할머니 사이의 유쾌한 대거리가 또 등장한단다.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청양행 버스기사와 할머니의 독한 농담

이정록

- 이게 마지막 버스지?

- 한 대 더 남었슈.

- 손님도 없는데 뭣하러 증차는 했댜?

- 다들 마지막 버스만 기다리잖유.

- 무슨 말이랴? 효도관광 버슨가?

- 막버스 있잖아유. 영구버스라고.

- 그려, 자네가 먼저 타보고 나한테만 살짝 귀뜸해줘. 아예, 그 버스를 영구적으로 끌든지.

- 아이고. 지가 졌슈.

- 화투판이든 윷판이든 지면 죽었다고 하는 겨. 자네가 먼저 죽어.

- 알았슈. 지가 영구버스도 몰게유. 본래 지가 호랑이띠가 아니라 사자띠유.

- 사자띠도 있남?

- 저승사자 말이유.

- 싱겁긴. 그나저나 두 팔 다 같은 날 태어났는데 왜 자꾸 왼팔만 저리댜?

- 왼팔에 부처를 모신 거쥬.

- 뭔 말이랴?

- 저리다면서유? 이제 절도 한 채 모셨고만유. 다음엔 승복 입고 올게유.

- 예쁘게 하고 와. 자네가 내 마지막 남자니께.

부면장은 하던 말을 계속했다.

"그런디 교육에 들어가기 전에 지가 특별히 부탁을 드리겄습니다. 제발 퇴비 좀 부지런히 해달라 이겝니다. 워떤 동네를 가볼래두 장터만 벗어났다 허면, 질바닥으 풀에 걸려 댕길 수가 웂는 실정이더라 이 얘깁니다. 아마 여러분들두 느끼셨을 중 알고 있습니다마는, 풀에 갬겨서 자즌거가 안 나가구 오도바이가 뒤루 가는 헹편이더라 이겝니다. 풀 벼서 남 줘유? 퇴비허면 누구 농사가 잘 되느냐 이 얘깁니다. 식전 저녁으루 두 짐쓱만 벼유. 그런디 저기, 저 구석은 뭣 땜이 일어났다 앉었다 허메 방정 떠는겨? 왜 왔다리갔다리 허구 떠드는 겨? 꼭 젊은 사람들이 말을 안 탄단 말이여. 야 - 저런 싸가지 웂는 늠으 색긔… 야늠아, 말이 말 같잖여? 너만 덥네? 저늠으 색긔…즤애비는 저기 즘잖게 앉어 있는디 자식은 저 지랄을 혀. 이중에는 동기간이나 당내간은 물론이구 한 집에서 둣씩 싯씩 부자지간이 교육을 받으러 나오신 분두 즉잖은 줄로 알구 있습니다마는, 웬제구 볼 것 같으면 아버지나 윗으른은 즘잖게 시키는 대루 들으시는디, 그 자제들은 당최 말을 안 타구 속을 쎅이더라 이겝니다. 교육중에 자리 이사 댕기구, 간첩모냥 쑥떡거리구…야늠아, 너 시방 워디서 담배 피는겨? 너는 또 워디 가네? 저늠의 색긔들…그래두 안 꺼? 건방진 늠 같으니라구. 너 깨금말 양시환씨 아들이지? 올봄에 고등핵교 졸읍헌 늠 아녀? 너지? 건방머리 시여터진 늠 같으니라구."

부면장이 한바탕 들었다놓은 뒤에야 겨우 뭘 좀 하는 곳 같아졌다. (이문구, 『우리동네』중「우리동네 김씨」에서,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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