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수영은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라는 수필에서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말들로 마수걸이, 에누리, 색주가, 은근짜, 군것질, 총채, 글방, 서산대, 벼룻돌, 부싯돌을 꼽았다. 아무래도 시인이 어렸을 때에 들은 말들 위주인데 아버지가 상인이라 어려서부터 서울 아래대의 장사꾼 말들을 자연히 많이 배웠다는 시인의 고백이다.
귀에 선가? '마수걸이'는 하루나 한 해 중 처음으로 물건을 파는 일을 뜻하고, '은근짜'는 몸을 파는 여자를 뜻하며, '서산대'는 옛날 글방에서 학동들이 책의 글자를 짚는 데 사용하던 막대기다. 먼지떨이라는 뜻의 '총채'도 요즘은 많이 쓰지 않는 듯하다.(고종석, 『말들의 풍경』 150~1쪽 , 개마고원)
우리말에 탁월한 고종석 작가가 꼽은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는 무엇일까? 가시내, 서리서리, 그리움, 저절로, 설레다, 짠하다. 아내, 가을, 넋, 술. 마감 직전에 주제를 정하고 나서 잠시 궁리한 끝에, 낱말 열 개를 순식간에 골라냈을 따름이라 글이 나간 뒤 시간을 두고 따져 보노라니, 부당하게 이 열 개에 오르지 못한 것이 여럿 떠올랐다고 뒤늦게 작가는 고백한다. 이어 꼭 하나를 보태고자 하면 '그윽하다'를 '술'을 들어낸 자리에 집어넣어 꼭 열 개를 맞추겠다고도 했다. (같은 책, 144~150쪽)
열 개의 낱말을 고른 이유를 일일이 열거하자면 대여섯 페이지가 넘어 관둔다. 대신 '고종석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로 인터넷 검색하면 칼럼으로 게재했던 원래 글이 고스란히 뜨니 정 궁금하면 찾아서 읽어보길 권한다. 고종석을 읽으면 군더더기 하나 없는 모범답안 같은 우리말을 접하는 기분이 든다. 당신도 그런지 읽으면서 느껴 보시라.
내 스마트폰 여러 앱 중 네이버 메모장에는 내가 읽은 여러 소설 속에 등장하는 희귀하고도 감칠맛 넘치는 토착어들이 제법 들어 있다. 글을 쓰다가 알맞은 자리다 싶으면 끼워 넣어 글맛을 돋울 요량으로 모아둔 거다. 문제는, 수백 개가 넘는 것들을 머릿속에 다 구겨 넣지도 못했을 뿐더러 막상 제격이라고 여겨지는 어떤 말의 이미지는 흐리마리 그려지지만 정작 그 어떤 말은 도통 떠오르지가 않으니 쌓아둔 말 뭉치가 그야말로 무용지물이다. 손으로 쓰면 기억하려나 싶어 여기저기에다 끼적여 대봤지만 헛수고요 손 메모장이든 앱 메모장이든 오다가다 보고 또 본들 쇠귀에 경 읽기라. 말로 노리개를 삼는 글쟁이가 되기에는 함량 미달도 이럴 순 없다.
한때는 한자성어나 외래어를 들이미는 게 글을 고상하게 잘 쓰는 줄 착각했다. 헌데 말하듯이 글을 쓰겠노라 습작의 원칙을 바꾼 뒤로는 눈과 귀에 착착 달라붙는 생기발랄한 우리 고유의 어법과 낱말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특히 고유어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는 족족 수집을 해댄 건 그에 비롯된 바다. 습득한 말들이 탁 치면 툭 하고 바로 튀어나올 만치 온전하게 내 것이 되는 나만의 방식을 개발하는 게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다.
그건 그렇고, 당신이 가장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우리말 열 개는 뭔가? 그러는 나는? 하도 많아서 정리가 안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