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안 하는 게 도와주는 것

by 김대일

(전략)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생명체로서 지구의 일부분이다. 이것이 인간의 조건이지만, 더 근원적인 법은 생사의 법칙이다. 생로병사는 누구에게나 절대적이다. 그러나 전자가 후자를 압도할 때, 즉 사회적 삶에 지나치게 의마를 부여할 때, 나도 타인도 지구도 망한다. 중년이 되면 지인들의 부고가 흔해지고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나의 죽음, 남의 죽음(간병'스트레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시대나 질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최고의 통치 방식인 이유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이 통치를 거부해 보자. 지구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인간은 수억만의 생명 중 하나일 뿐이다. 지구는 인간의 죽음에 관심이 없다. 지구에는 파괴를 일삼는 골치 아픈 존재의 졸卒. 인간의 죽음은, 사자에게는 안식이고 지구에는 온전함을 선사한다. 죽음만 한 평화가 없다. 저출생을 문제 삼는 이유는 남성 중심의 인구학에 기반한 국가주의적 사고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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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당대 지구 파괴는 인간이 자신의 두 가지 실존적 조건 중 사회성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한 결과다. 근대 자본주의 체제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인간형은 의미를 추구하는 생산적인 사람이다. 약간의 조증躁症도 필요하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이름을 남긴다"는 통념의 구체성을 생각해보자. 이름을 남기려면 평생 노력해야 한다. 노력이 성공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노력하는 사람, 좌절하는 사람, 그 주변 사람 모두 불행하다. 게다가 이젠 타인의 성공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과정이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호랑이 가죽'은 더할 나위 없는 인간의 수치다. 인간은 지구상의 그 어떤 생명체의 '가죽'을 취할 자격이 없다. 모든 생명은 태어난 모습대로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야 한다.

장기나 피를 팔아야만 하는 처지의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인간은 이름을 남긴다"도 예외가 많아졌지만, 대개는 다양한 형태의 입신양명이나 최소한의 회고록이라도 남겨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 타인과 자연을 해치고 자신의 일상을 포기하는 인생은 얼마나 끔찍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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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인간이 자신과 지구를 살리는 길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 생태사회주의가 주장하는 탈성장만이 답이다. 내겐 강남 좌파든 강남 우파든, 열심히 사는 부자들의 인생이 최악이다. 이들은 자연파괴를 가족 단위로 세습한다. 인간의 존재 의미는 사회적 성취가 아니라 생명체로서 도리, 자연과의 관계에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전진한다? 역사적 평가에 맡긴다?" 여기서 역사는 발전주의에 기반한 근대 역사주의의 산물이지, 사실이 아니다. 혁명은 역사의 기관차가 아니다. 이제 혁명은 질주하는 자본주의를 멈추게 하는 브레이크여야 한다.

'무의미한 인생'이야말로 '없는 우리'의 최고 무기다. 기존의 역사는 상대화하면 그만이고, 무엇보다 인간은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도 2초 이상 타인을 기억하지 않는다. (정희진, 경향신문 <정희진의 낯선 사이-위스키 온 더 락, 얼음의 법칙을 따르자>, 2022.05.18.에서)

폐부를 찌른다. 지금 내가 나 자신과 지구를 살리는 길은 아무 일도 안 하는 거라는 말은 그 울림이 되우 크다. 뭔가를 이루려는 시도 자체가 나를 죽이고 지구를 죽이는 짓이다.

대형 마트엘 들렀다. 손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다는 밀키트 코너 앞에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군침을 돌게 하는 몇 가지를 들었다 놨다 하던 차에 불현듯 칼럼이 떠올랐다. 식탐은 해소될 지 모르겠지만 남는 건 식재료를 담았던 비닐과 플라스틱 용기뿐. 내가 버린 그것들이 지구 상에서 해소되기까지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인가. 나 잘 먹자고 지구를 죽이는 꼴이라니. 안 사는 게 도와주는 거라며 눈 질끔 감고 돌아섰다. 아침에 읽은 칼럼에 이미 세뇌당한 나다.

이 칼럼, 당분간 내가 읽은 칼럼 중 원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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