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손잡고 나란히 미장원엘 가는 것보다 커트점에 들어오는 일이 더 흔치 않다. 미장원을 이용하는 남자는 많아졌어도 이발소(남자 머리 깎는 곳을 통칭. 번드르르하게 지어서 바버샵이니 커트점이지 실상 이발사 자격증 따야 그런 걸 열 수 있다)에 여자가 드나드는 건 어째 좀 어색하다. 남자 머리를 다룰 줄 아는 여자 미용사는 많아도 여자 머리 다룬다는 남자 이용사는 들어본 적 없고 모르모토를 자청해 이발소에서 머리 깎았다는 여자도 못 들어봤다. 그러니 남자야 머리 깎으러 온 줄 뻔히 알겠는데 눈칫밥 얻어먹는 신세인 양 괜히 쭈뼛거리며 따라 들어오는 여자 일행을 보면 내가 다 부쩌지를 못한다. 함께 산책하러 나온 김에 커트점엘 들른 수도 있고 일전에 깎은 머리 스타일이 영 맘에 안 들어 남자를 단도리할 겸 따라왔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머리 깎느라 여념이 없는 와중에도 내 등 뒤에서 범죄 현장을 목격하듯 응시하는 거울에 비친 여자를 발견하고는 공포스러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남편이든 남자친구든 따라 들어온 여자가 남자가 지배적인 이 공간에서 할 일이라고는 내 인생의 반쪽의 머리가 어떻게 다듬어지는지 구경 내지 감시하는 것밖에는 별로 없다. 마스크를 써서 가뜩이나 눈매만 두드러지게 드러날 뿐인데 행여 깎사가 제 임무에 소홀해 직무유기의 덤터기를 제 분신에게 뒤집어 씌우지나 않나 하고 눈에서 광선이라도 쏟아지거나 "저번에는 안 그러더니 오늘은 왜 그 모양으로 깎으세요?" 대들듯이 깎사의 기술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으면 심장이 오그라들고 가만하던 양손이 마른땀으로 젖는다. 성악설을 신봉하지는 않으나 남녀가 팔짱 끼고 점방으로 입장하면 해코지하지 않을까 일단 경계부터 하고 보는 이유이다. 본능적으로 갖추는 철저한 안보 태세.
느즈막한 오후에 가게 문밖에서 얼씬거리는 장년 부부를 발견했을 때 안보 태세는 이미 작동 중이었다.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남자를 떠받치듯 안아 가게로 들어서는 여자는 살짝 날카로운 말투로 남편인 듯한 남자의 머리를 깎아 달라고 주문했다. 남자를 어렵사리 의자에 앉힌 뒤 "어떻게 깎아드릴까요?" 물었더니 내 등 뒤에서 여자가 "어찌 깎으라까요?"하며 남자에게 되묻는다. 아, 이 업을 시작하면서부터 등 뒤에서 터져 나오는 '그녀 목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는 직업병을 얻게 된 나는 별일 아닌데도 괜히 또 긴장한다. 여자의 되물음에 남자가 가시 돋힌 목소리로 "나한테 물으면 우짜노! 뭐가 보여야 말을 하지." 안경을 벗고도 두 눈을 안 뜨는 남자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여름이고 하니 말끔한 스타일로 정리했다. "선생님, 혹시 사단장 머리 아시나요? 정갈하고 깔끔한 스타일 말입니다. 그렇게 깎아 드렸으니까 올 여름 시원하게 나실 겁니다."
남편인 듯한 남자 머리 손질하는 동안 미동도 않고 다소곳하게 앉아 있던 여자가 조용히 요금을 치르고 다시 남자를 붙안고 가게 문을 나섰다. 모처럼 만의 이발로 개운해진 남자에 비해 피로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여자의 얼굴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남자 손을 잡고 초점 잃은 시선으로 멍하니 길을 나서는 여자의 뒷모습이 처연했다. 이런 남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