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딸이자 막내딸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by 김대일

나의 둘째딸이자 막내딸은 중2다. 중1 마칠 무렵 교내 동아리로 펜싱부를 선택해 방과후 학원 가기 전까지 펜싱 연습을 한다. 역병 때문에 등교일자가 들쭉날쭉해도 연습만은 거르지 않고 줄기차게 한다. 펜싱이 인생의 전환점? 그럴 리가. 자기 평생에(도대체 얼마를 살았길래 '평생' 운운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만뒀다. 하여튼) 그처럼 우아한 스포츠를 본 적이 없어 막 끌리던 차에 마침 살을 빼겠다고 작심한 터라 이리저리 잴 거 없이 택한 거라나. 학교 동아리활동이라 돈 들 염려없으니 걱정 붙들어 매시라며 부모 생각해주는 척 립서비스를 아낌없이 작렬하는 센스는 덤으로 하고.
2학년 올라가고 얼마 안 된 학기 초, 칼도 제대로 휘두를 줄 모르는 주제에 2박3일로 강원도 인제에서 열리는 펜싱 시합엘 나가겠으니 꼭 허해 달라는 요구는 평소 수줍어서 제 의사를 피력하는 데 소극적인 아이의 성향으로 미루어 보건대 대단히 파격적이었다. 좀 먼데 괜찮겠냐고 걱정스레 물으니 배움에 멀고 가깝고가 어디 있냐고 반문하길래 더 토 달 생각을 버렸다.
지난 주, 그러니까 4월 말에 중간고사를 치렀다. 걔 입장에서는 성적으로 우열을 판별하는 시험이라는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시험대 위에 난생 처음 올라선 것이다. 여섯 살 많은 지 언니 때와 교육 환경이 달라진 면도 있겠지만 대체로 시험이란 걸 모르고 살아온 아이였다. 아이 엄마가 막내딸한테 보이는 교육열이라는 게 큰딸하고는 그 결이 확연히 다르다. 차별이라기보다 두 아이의 판이한 성향 때문이겠다. 상대적으로 다부지고 억척스러운 언니와는 달리 매사를 허허실실로 대하는 아이한테 언니가 보여 줬던 학구열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진즉에 판단했는지 모른다. 그저 남들보다 확 뒤처지지 않을 기본만 해줘도 오감하다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일까. 성적 스트레스와는 거리가 먼 아이였다. 물론 어릴 적부터 기초를 다지지 못한 탓에 수학 실력이 또래 애들보다 현저하게 떨어지는 게 못마땅한 아이엄마가 보습 학원엘 보내면서까지 애를 잡은 적이 없진 않았고 학교 선생이 아닌 학원 선생으로부터 모질고 혹독한 가르침을 받았음에도 수학 점수가 바닥 청소에만 열일을 할 뿐 좀처럼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아이엄마는 간헐적 정신분열을 일으켜 밤마다 애를 또 잡으니 막내딸 눈에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던 게 사실 아닌 사실이긴 하지만 말이다. 연일 자신에게 가해지는 푸닥거리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절친들과 놀이터에서 수다를 떨거나 줄넘기 학원에서 땀범벅이 되도록 줄넘기를 해대면서 활로를 찾아가는 모습이 마치 걔만의 독특한 처세술인 듯싶어 놀랍고 경이롭기까지 했다. 엄마에 대한 반항심에서 비롯된 게 아닌 그냥 아이의 천성이다. 쓰리고 아린 감정은 그것대로 냅둔다, 절대 마음에 담아두지 않겠다, 세상은 즐겁고 유쾌한 것 천진데 슬퍼할 겨를이 어디 있나 뭐 그런 거 말이다. 성마른 아빠한테는 눈곱만큼도 기대하기 어려운 낙천성을 보유함으로써 생명력이 넘친다. 그런 아이한테 성적 스트레스란 얼토당토아니하다.
그런데 갑자기 지 엄마한테 독서실을 끊어달라고 졸라서 중간고사를 준비한다는 명목 아래 학원이 끝나는 7시부터 10시까지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더라. 책상머리에 앉은 모습이야 늘 보긴 했지만 밀린 숙제 아니면 학원에서 틀린 수학 문제의 오답노트 작성( 학원 선생이 매일 내놓는 문제 절반 이상을 틀리는 바람에 중노동으로 전락한)으로 내내 죽을상이었던 녀석이 자발적으로 열공 모드라니.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법한 기이하고도 충격적인 이변이 아닐 수 없었다.
나의 둘째딸이자 막내딸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게 정말 많은 아이다. 그러니 미지의 어떤 것을 접한다면 아이는 이내 파천황의 희열에 빠지고 만다. 집 근처에 숱하게 널려 있는 독서실 역시 마찬가지다. 집에서 공부하면 집중이 안 된다고 엄마를 구워 삶아 아예 독서실을 전세 낸 언니를 매일 보지만 아이에게 독서실은 그저 미지의 공간일 뿐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어울리던 같은 중학교 절친이 중간고사 대비해 독서실을 끊으니 잘 됐다 싶었겠지. 자기도 같이 끊으면 시험 기간 동안만이라도 절친하고 잠 자는 시간만 빼고는 온종일 붙어 다닐 수 있어 좋고 엄마 잔소리 안 들으니 더 좋고 공부란 자고로 혼자 하기보다는 여럿이 함께 쑥덕공론해야 효율이 더 나는 법이라는 근거라고는 짜달시리 없어 보이는 주장에 자기도 합류함으로써 성적이 정말로 쑥쑥 올라갈 것 같은 기대감에 부풀어 또한 좋으며 앉아만 있어도 괜히 뿌듯하고 뽀대가 날 듯한 생애 첫 독서실 입성에 가슴이 무지 설렐 만도 하다. 명분도 좋잖아. 독서실에서 공부 열심히 해 성적을 향상시켜 엄마의 한없는 성원에 보답하겠다는데 마다할 이 세상 어미가 누가 있을까. 내 예상이 맞았다. 독서실을 다니는 내내 아이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몰랐던 걸 알아가는 깨달음의 쾌감으로 아이는 달떴던 게 분명하다. 그게 엄마의 바람처럼 그간 풀지 못하던 수학, 영어 문제를 하나씩 정복한 것에서 기인했다기보다는 이토록 안락하고 흥미진진한 공간을 비로소 발견했다는 행복감을 여한없이 만끽하려는 감정이 더 큰 게 차이라면 큰 차이겠지만.
곧잘 치른 한두 과목으로 독서실 비용에 상응하는 결과로 내세우려는 수작이 귀여우면서 같잖았지만 전체적인 시험 평가는 그저 그랬다. 기대 이하라는 게 더 냉정한 표현이겠다. 그런데도 아비는 말할 것도 없고 실리주의자인 어미까지 그간 노고를 치하하는 데 인색하지 않은 까닭은 올해 초 펜싱 시합 참가와 더불어 자기 혼자서 이루고자 하는 뭔가를 설정해 결과야 어떻든 간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다는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걔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 기쁨과 기특함이 더 컸기 때문이리라.
나의 둘째딸이자 막내딸도 크면서 점점 번다한 세상 물정을 알아챌 것이다. 그러면서 희노애락애오욕의 감정이 뒤섞여 지금의 낙천성에 금이 가 상처받지 말란 법 없다. 하지만 천성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 아비로서는 세상 풍파에 아이가 짓이겨지지 않도록 끝내 지켜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허나 그 아비가 지켜줄 수 있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을 테고 결국 제 인생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야 해서 지금부터라도 내성을 기르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글픈 일이지만. 펜싱 시합을 가거나 중간고사를 대비해 독서실을 끊은 일이 남들이 봐서는 생활의 사소한 삽화에 지나지 않겠지만 나의 둘째딸이자 막내딸이 스스로 홀로서기를 위한 꿈틀거림의 전조라는 측면에서는 그 의미가 자못 크다. 아이가 커간다는 건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 아비가 기록으로 몇 자 남기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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