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금 안 올리면 자주 들를께요

by 김대일

주말 오후 느지막이 딸인지 손녀인지 그 관계가 가늠이 잘 안 되는 꼬마 여자애를 데리고 들어온 남자는 풀린 파마를 다시 할 예정이니 옆과 뒤 아랫머리만 깔끔하게 다듬고 윗머리는 가급적 건드리지 말랬다. 머리숱이 많을수록 파마 모양이 잘 나온다는 걸 아는 나는 손님의 요청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사장은 파마를 어디서 했어요?"라며 가발인 줄 모르는 내 파마 머리를 보고 친근한 척 굴던 손님이 "요 옆 코너에 <알파> 알지요?" 운을 띄운 뒤 본격적으로 왜자겼다. 내 점방과는 한 블럭 거리인 남성 커트점인데 말하자면 경쟁 관계인 곳을 들먹인 것이다.

"그 가게 벽에 '초심으로 돌아가자'라는 문구가 붙어 있나 그래요. 한동안 손님들로 북적거리더니만 오천 원 하던 요금을 슬그머니 육천 원으로 올리는 거야. 수지가 안 맞대나 어쩐대나."

초심과 요금 인상을 대비시키는 수법으로 비아냥을 극대화시키는 고도의 화법이 아닐 수 없다. 남자를 분노케 하는 가게가 또 있었나 보다.

"○○○○ 아파트 알죠? 거 전철 역 바로 앞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말이요. 내가 거기 살걸랑. 그 상가에 염색방이 있어. 단골이었는데 칠천 원 하다가 구천 원으로 올리고부터는 안 가."

배 부른 놈이 더한다지만 남자는 자기의 변심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듯이 다음과 같이 둘러댔다.

"남자란 동물이 참 모순적인 게 택시비 아까운 줄은 모르면서 이발비 천 원 오르는 건 절대 못 참는다 말이야. 하루에 수십만 원어치 술은 호기롭게 퍼마시면서 천 원 아까워서 단골 가게를 바꾸는 게 남자다 이 말씀이야."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물가와 월세 올려 받으려고 호시탐탐 때를 노리는 건물주에 아랑곳하지 않고 개업 때 내걸었던 요금을 끝까지 고수해야지만 여기서 그나마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다는 의미를 말 쿠션 두어 번 튕구는 고단수의 화법을 구사해 가슴에 끔찍이도 와닿게 만드는 손님의 협박성 조언에 그저 '예예' 맞장구만 칠 뿐이었다. 하기사 거기다 대고 대거리할 명분이 내겐 없다. 내건 요금을 정한 건 주인인 나고 커트 오천 원, 염색까지 포함하면 도합 만 이천 원 요금이 적당해 지불할 용의가 있어서 찾아온 손님 보고 요금 올리는 건 주인 재량인데 그깟 천 원 올렸다고 발을 끊는 게 사람으로 할 짓이냐 그 놈의 인심 참 야박하다고 대드는 건 그길로 장사 접겠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장사 쉽게 볼 일 아니다. 임의로 정한 요금이 가게 꾸리는 내내 족쇄가 될 소지가 다분하니까. 올리자니 손님 떨어질까 겁나고 고수하자니 남는 게 없고. 뭐가 되었건 장사를 고민하는 이는 이를 경계할지어다.

이발이 거의 끝나갈 무렵 예의 손님이 또 훅 치고 들어온다.

"쉬는 날이 화요일이라지요? 급한 일 생겼다고 토요일, 일요일 쉬고 그러면 안돼요."

이 양반 자꾸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개업하고 두 달 겪어보니 토요일, 일요일 매상이 제일 짭짤해요. 대목이라면 대목인데 그런 날 쉴 까닭이 없지요. 가뜩이나 후발주잔데 물불 가릴 때가 아닙니다."

정답을 들은 양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남자는 딸인지 손녀인지 그 관계가 가늠이 잘 안 되는 꼬마 여자애의 손을 잡고 가게 문을 나섰다.

"자주 들를께요."

고맙지만 립 서비스 앞에 생략된 말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요금 안 올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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