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 8월생인 나는 오십 줄이 초읽기다. 반백 년 전반생이 남 못지않은 우여곡절로 점철됐고 그 여파가 앞으로 또 나타나지 말란 법 없다. 웬만큼 극복이 된 것도 같은데 착각이란 외피를 둘러쓴 나쁜 기억이 불쑥불쑥 마각을 드러낼라 치면 머리털이 곤두서기 일쑤다. 예를 들어 이해를 돕겠다. 돈 무서운 줄 모르고 은행, 카드, 제2금융, 대부업체 대출도 모자라 자동차 저당, 인감 팔아 사채까지 온 천지에 빚을 깔고 살던 삼십 대, 하루만 연체되어도 빚 독촉으로 휴대폰에서 불이 날 지경이었던 그 시절을 망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느닷없이 서울 지역번호가 달렸거나 1588이니 1577이니 하는 전국대표번호를 빙자한 전화가 오면 기획부동산, 대출 권유 아니면 선거철에는 설문조사가 다인데도 혹시 채 청산하지 못한 빚더미가 툭하고 튀어나오는 건 아닌가 급 긴장하고 만다. 파란만장이란 단어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지만 고단했던 지난 역정으로 인한 후유증이 여직 가시지 않은 게 맞다.
중년의 위기는 여러 가지 탈을 쓰고 덤벼든다. 사람, 일, 금전 따위가 제가끔 혹은 떼로 몰려서 사람 속을 뒤흔들어 놓는다. 중년의 위기란 청년의 질풍노도와는 차원이 다르게 치명적이어서 봉착하는 순간 웬만해서는 원상회복이 난망하다. 소싯적 견결한 자긍심과 원만한 인간 관계망을 자랑했건만 연거푸 경제적 파국을 겪은 뒤로는 약간의 동요로도 붕괴의 늪에서 허우적대기 십상인 중년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탱탱하던 엉덩이가 바람 빠져 축 처진 풍선모양 서글프고 볼품없어지는 퇴화이고 소싯적이 정상 상태라면 나는 비정상적인 궤도 이탈의 연속인 나날을 살 뿐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고종명을 인생 팔십으로 잡으면 내 수명은 앞으로 30년 남았다. 인생 전반기가 우울한 블루로 물들여진 탓에 후반기 전망이 썩 밝지만은 않다 해도 이대로 주저앉긴 너무 아쉽다. 전반생이 비극적이었다고 후반생마저 속편이어야 할 까닭은 없다. 하여 나는 결심한다. 내 성정 상 쉽지는 않겠지만 내 후반생은 무조건 유쾌해지기로! 반도 채 안 남은 인생이 버슬버슬 바스러지는 부스러기 같을지언정 유쾌하게 사그러지고 싶다고. 앞으로 내 일상이 같잖은 비운 따위로 주눅 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유쾌한 그 무엇을 늘 희구하고 수집해서 정성스럽게 여투어 두겠노라고. 그래서 내 생애 첫 저서가 우울에서 벗어나려는 탈출기였다면 다음은 나를 보다 윤택하게 할 유쾌한愉快漢을 찾아나서는 모험담이 될 것이라고. 그 프로젝트는 이름하야 <유쾌한 씨가 숨은 곳을 아시오>.
내 유쾌가 상쾌하고 즐거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상투적인 권선징악은 말할 것 없고 감동을 품은 익살, 슬픔을 머금은 역설, 전복과 반전 따위 나를 각성시키는 거면 희로애락을 따지지 않으련다. 그 대상이 사람일 수 있고 사물일 수 있으며, 지금 드러난 현상일 수 있고 케케묵은 과거의 편린일 수도 있겠다. 숨어 지내는 유쾌한 씨를 찾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냐마는, 그래도 나는 바야흐로 발진한다!
* 사실 위 글은 2020년 10월 '브런치'에 작가랍시고 등록한 뒤 게시한 첫 글을 새로 고친 글이다. 이후로 난삽하나마 조각글 사백여 개가 네이버 메모장에 쌓였다. 유쾌한 씨를 찾기 위해 애쓴 나름의 발자취인 셈이다. 쌓인 글들을 갈래짓고 다시 다듬는 건 물론이고 도처에 숨은 또다른 유쾌한 씨를 찾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겠다. 그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겨 책으로 만드는 건 매력적이지만 인생이 부질없게 느껴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으로 <유쾌한 씨가 숨은 곳을 아시오> 프로젝트는 충분히 유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