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두 살 위인 장 샘은 네 번째 고배를 마셨다. 아니 가위와 빗 일체를 택시에다 두고 내리는 바람에 자진 포기한 시험까지 합하면 오전 오패다. 장 샘을 따라 이발사의 길로 인생 진로를 변경한 아들도 봄에 치른 2022년 1회 실기시험에서 제 모친과 사이좋게 낙방했다.
장 샘의 남편은 군인연금을 받는 퇴역군인이자 요즘은 주간보호센터에 적을 둔 요양보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우연하게 인사를 나눴을 때 딴 데 한눈 팔지 않고 외길로만 종사한 이의 견결함이랄지 고지식함이 묻어 나오는 인물임을 직감했다. 거기에 역시 오전에는 재가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오후에는 이용 기술을 배우는 장 샘의 완고한 종교적 신념까지 포개져서 헛짓거리만 아니면 가정의 안위는 무탈하게 영위할 거라 장 샘을 아는 이면 누구나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매달 따박따박 통장에 꽂히는 연금에 부부가 같이 부지런하게 돈까지 버니 남부러울 게 뭐냐는 게 그 근거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장 샘이 이용 기술을 배우려는 게 봉사와 나눔이라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명분도 제법 큰 지분을 차지하고 보면 무릇 제 밥그릇이 그득해야 주변 사람 밥그릇도 디다보는 법인가 보다.
그런 장 샘이 변했다는 소문을 듣고는 괴이쩍긴 했다. 이용 실무를 익히려고 개업 전까지 다녔던 학원 겸 이용실 원장과 실장이 며칠 전 찾아와서 함께 저녁을 먹다가 귀띔해줬다. 장 샘이 요새 가게 알아보러 다닌다고. 자기든 아들이든 둘 중 한 명만 자격증을 따도 곧바로 가게를 열 심산이라나. 아무개 지역에 나온 점방인데 어떨 것 같냐고 물건 분석을 넌지시 물어온 게 한두 번이 아니랬다. 하기사 개업하고 얼마 안 있어 인사 차 내 가게를 찾은 장 샘이 개업 비용, 거래처 따위를 꼬치꼬치 묻는 것도 모자라 그걸 목록화해서 자기한테 꼭 넘기라고 강다짐까지 받았으면 무딘 사람이라도 그 푼수에 대충 감이 와야 했다. 모친이 하루의 절반을 지내는 주간보호센터를 지켜보면서 시설이 됐든 재가가 됐든 요양보호사는 대가에 비해 들여야 할 공이 너무 많은 직업이면서 어쩌면 조막만 한 사명감에라도 기대지 않으면 참 버거운 직업일 거라 느꼈다. 장 샘 부부, 특히 장 샘에게서 감지되는 심경의 변화는 거기서 기인한 게 아닐까 하고 넘겨짚어 본다. 한 마디로 지쳤다는 거다. 그런 차원에서 요양보호사보다 운신하기 편하고 수입도 짭짤할 것 같은 급작스런 이발사 전향은 그 자체로 타당하다.
결국 역량이 문제다. 한두 푼 드는 게 아닌 가게가 개점휴업하지 않으려면 주인장의 기술력에 의문이 제기되어서는 안 된다. 가게 운영에 관해서만은 따따부따가 도가 지나칠 정도인 부친이지만 이발사로 밥 벌어먹겠다 작정을 한 사람일수록 특히 귀담아 들어야 할 아포리즘이 있다. '남 밑에서 최소 명절 세 번 넘게 나야 제 가게 열 엄두가 난다.' 손님이 들끓는 가게에 시다로 들어가 바닥에 널부러진 머리카락 치우기부터 손님 머리 감기기, 염색하기, 배포 큰 주인 원장이면 한두 손님 머리 만져 보라고 자리 비켜 줄 때 얼른 깎아보기를 추석, 설날, 추석 혹은 설날, 추석, 설날 식으로 계절이 몇 번씩 바뀔 때까지 진득하게 일에 파묻혀야 이발의 도가 뭔지 겨우 알아챈다는 속내겠다. 학원에서 습득한 총론을 밑바탕에 두텁게 깔아두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후 무수하게 직면하는 기술적 난관, 기술 외 직업적 소양 따위는 현장에서 수다하게 반복해서 겪어야지만이 제 몸에 맞는 해법을 찾을 수 있고 육화될 터이다. 그게 이른바 이발의 도라고 표현되는 기술의 숙련화 과정이다. 이발 기술뿐이랴. 세상 이치라는 게 그렇잖은가. 곱고 곧게 깔린 꽃길이란 어디에도 없기 마련이다. 결국 무엇인가를 시도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물론이거니와 그 무엇을 응용하고 변주할 임기응변까지 미연에 갖추는 게 시행착오를 줄이는 최선의 방책이 아닐는지. 그런 의미에서 장 샘의 행보는 무모할 수밖에 없다.
이용 기술에 대해 진심인 장 샘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지만 그녀가 이 바닥을 바라보는 시선이 의외로 너무 가볍다는 생각만은 지울 길 없다. 같은 학원을 다니며 다섯 번만에 가까스로 실기 시험에 붙어 얼렁뚱땅 가게 차려 원장 소리 듣는 내가 부러워 보인다면 하는 수 없다. 하지만 버젓이 부친을 두고 남 밑에 시다로 들어가서 갖은 구박 다 들어가며 주말마다 수십 명 머리에 염색약을 도포하고 머리 감기며 커트가 왜 이 모양이냐는 손님의 질타에 원장이 다시 손을 보는 굴욕을 숱하게 당한 '명절 세 번'을 난 내 속사정을 간파한다면 부러움보다는 두려움이 더 클지 모를 일이다. 내 돈으로 내 맘대로 하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면 달리 맞받아칠 꺼리가 궁한 나지만 헛짓거리하다 한두 푼도 아닌 재산을 날려 먹다간 견고했던 그들 가정의 안위에 균열이 가지 말란 법 없어 걱정이다. 모르긴 몰라도 생돈 앞에서는 예수님도 어쩌진 못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