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꾼의 길

by 김대일

고급염색은 일반염색에 비해 도포 후 샴푸하는 데까지 10분이 채 안 걸린다. 그 시간을 넘겨 방치하면 염색이 말라 행구기 불편하고 손님에 따라서는 피부 염증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어 어지간하면 샴푸 시간을 맞춰야 한다.

그날따라 손님으로 제법 성시를 이뤘다. 일반염색은 도포 후 대기시간이 20분이라서 염색을 다 바른 뒤 커트 손님을 응대하는 데 여유가 좀 있다. 그러니 서두를 까닭이 없다. 그 손님은 일반염색을 요청했다가 갑자기 고급염색으로 바꿨다. 두 배 장사니 일반염색약을 염색볼에 이미 부었다고 해서 마다할 내가 아니다. 정성 들여 염색약을 머리에 바르는 중에 머리 수북한 손님이 가게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무래도 바짝 올려 깎는 스포츠형을 주문할 것 같았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갑자기 셈속이 복잡해졌다. 막 끝낸 고급염색 손님을 샴푸시키려면 10분 남았다. 그 시간 내에 머리를 깎을 것인가 아니면 샴푸할 때까지 커트 손님을 대기시킬 것인가. 전자를 선택한 나는 거침없이 커트보를 두르고 바리캉을 들었다. 머릿속은 10분 내에 커트를 끝내고 염색 손님 샴푸 작업에 곧장 돌입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마음이 급하니 몸도 따라 반응했나 보다. 커트하는 내 뒷모습이 엉덩이에 불이 붙은 망아지마냥 경황없어 보였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시간 안에 커트를 마친 나는 고급염색 손님을 얼른 세면장에 앉혀 머리를 감겼다. 모든 걸 지체없이 끝냈다는 안도감과 뿌듯함으로 으쓱했다. 신속하다는 건 일의 능률을 높일 수 있는 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나는 받아들인다. 손속이 늘었다는 소리와도 통하니 신속을 실현한 나는 점점 꾼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자뻑하기에 이르렀다.

머리 손질까지 다 마친 고급염색 손님이 요금을 지불하고 그냥 나가는 게 아니라 불만스레 나를 쳐다보면서 한 마디 툭 던졌다.

- 주인양반, 뭐가 그리 급해요? 머리 깎는 걸 뒤에서 보니 정신이 다 없습디다. 그래 가지고서야 손님이 불안해서 머리를 맡기겠소?

다 당신 위해서, 10분 만에 당신 머리 감기겠다는 그 일념 하나로 호들갑 아닌 호들갑을 떨었는데 그런 내 마음을 왜 몰라주냐고 속으로는 야속해했지만 주의하겠으니 죄송하다는 말만 연신 주워섬겼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그 장면이 내 머릿속에서 영 떠나지 않는다.

내가 뭔가를 착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일의 능률이랄지 전문성이 신속과는 썩 정비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혹이 나를 미망에 빠트린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이 뜻밖의 계기로 당연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면 모든 걸 의심해봐야 한다. 고급염색 손님이냐 커트 손님이냐 둘 중 하나에 편중된 흑백논리에 매몰된 건 아니었을까. 정성을 들여 커트를 하다가 샴푸할 때가 되었다면 커트 손님에게 정중하게 양해를 구한 뒤 고급염색 손님의 머리를 감긴 뒤 다시 커트 작업에 임했더라면 어땠을까. 신속하지는 않되 두 손님한테는 균형 잡힌 일솜씨로 인상에 더 남지 않았을까. 도道 없는 술術이 불현듯 내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듯하다. 선생 똥 안 먹는 개가 장사꾼 똥도 안 먹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아직 멀고먼 장사꾼의 길이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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