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 개방

by 김대일

세면대 쪽 불만 켜두고 실내등, 사인볼, TV까지 싹 끄고 빨아 놓은 수건을 막 널려는데 몸집이 비대한 젊은 사내가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길다는 여름해도 벌써 넘어간데다 불 꺼진 점방이 파장 분위기인 줄 모르지 않으면서 그는 냉큼 의자에 앉아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얼른 머리 깎아주길 보채는 듯했다. 암만 손님이 아쉽기로서니 마감 즈음에 들이닥치는 손님은 밉상이다. 그러고도 미안하다는 양해의 언사 한 마디 없이 막무가내로 손님 대접을 받으려는 치는 밉상을 넘어 진상이다.

바가지를 뒤집어쓴 형상인 투블럭 머리를 한 사내는 처음에는 스타일을 고수하려다가 마음이 바뀌었는지 짧은 상고머리로 깎아달랬다. 숱은 덥수룩했고 아랫머리와 윗머리 길이가 확연하게 차이 나는 투블럭을 단정한 장교 머리로 탈바꿈시키자면 시간을 제법 잡아먹을 성싶었다. 졸지에 연장 근무를 하게 된 나는 부아가 나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나긋하지만 각단진 어조로 부탁 겸 충고를 했다.

"7시30분이 마감이니 다음에는 7시 전에 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내 푸념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교수님이 제 시간에 보내줘야 말이지요."

이건 무슨 소리지. 주변에 대학교가 없지는 않으나 버스를 타면 적잖게 정거장을 거쳐야 당도하는 거린데 이 점방까지 일부러 찾아올 리 만무하다. 암만 요금이 싸다 해도 그렇지. 혹시 싼 데다가 머리까지 잘 깎는다는 소문이 거기까지 퍼진 때문인가 싶지만 개업 석 달째인 신출내기가 그럴듯한 소설을 쓰고 자빠지지 않는 한 전혀 현실적이지 못하다. 그러면 사내는 내 퇴근을 왜 지연시킨 건가.

"대학원생이신가 봐요?"

"의대생입니다. 본과."

옳거니, 사내의 정체는 내 점방으로부터 지근거리에 부산에서도 유서가 깊은 대학병원이 있는데 거기를 출입하는 의대생이렷다. 다른 분야도 아니고 유능한 의사가 되기 위해 불철주야로 학업에 매진하는 의학도라면 불까지 다 끈 마감에 맞춰 들이닥쳐서는 머리 깎아내라고 억지를 부려도 깎새는 장차 명의가 되실 분을 문전박대할 리 있겠냐며 칙사 대접을 해줄 거라면 큰 오산이다. 알량한 오천 원 매상 때문에 안 들어도 될 전기, 수도세를 부담하고 퇴근까지 볼모로 잡힌 깎새의 심정을 안다면 머리를 꼭 오늘 늦은 저녁에 깎아야 할 까닭은 없다. 그러니 더 그 사내가 괘씸했다. 허나, 이어지는 사내의 핑계인지 넋두리인지 애매한 궁시렁거림을 듣자마자 나는 도섭을 떨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이 공부도 못하고 뚱뚱한 녀석이 머리 꼬라지까지 꾀죄죄해서 어따 써먹을 거냐고. 내일 당장 또 봐야 하는데 시간은 없고 해서. 교수님 눈치를 보는 나도 한심하지만 어쩔 수가 없잖아요."

"오늘처럼 점방 불이 꺼져 있어도 내가 보이면 그냥 들어오세요. 언제든 문호 개방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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