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국민'의 차이가 머릿속에 쏙 들어오질 않아서 늘 궁금했다. 사는 데 필수적인 것은 아니되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하는 건 왠지 사회적 태만인 양 찜찜했다.
로버트 파우저는 원어민처럼 한국어를 구사하는 언어학자이다. 그는 언어와 관련한 칼럼을 일간지에 정기적으로 기고하는데 최근 칼럼에서 외국인을 향한 인식 변화를 '국민'이 아닌 '시민'의 사용을 늘려나가는 걸로 그 시작점을 삼자고 제안한다. 필자는 '국민'과 '시민'의 사전적 의미에 우선 천착해 그 까닭을 살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국민'은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 또는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정의에는 논리적으로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국가의 구성원'과 '국적을 가진 사람'의 차이다.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에는 외국인들을 비롯해 다양한 이유와 신분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포함되는데, "국적을 가진 사람"에는 자연스럽게 외국인은 제외된다.
'시민'은 어떨까. 같은 사전에 의하면 '시민'은 두가지 정의가 있다. 하나는 "시市에 사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국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나라 헌법에 의한 모든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 자유민"이다. 후자는 국민과 비슷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다. 둘 다 국가 구성원에 관한 정의지만 국민에 비해 시민은 국적을 논하지 않고 대신 사회 구성원의 법적 권리와 사회적 책임에 관해 규정한다. 다시 말해 행위의 주체성을 포함하는 시민에 비해 국민은 다소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보인다. 또한 '자유민'인 시민은 행위의 주체성을 발휘하여 자신들이 속한 국가를 감시하거나 커다란 변화를 요구할 수도 있다. (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국민' 대신 '시민'에 주목할 때>, 한겨레, 2022. 06.16. 에서)
로버트 파우저가 풀어낸 사전적 의미에서 방점은 자유와 권리에 있는 것 같다. 국가가 국적이라는 법률적 근거로 국민에게 충성과 복종을 요구하고 자유와 권리에 제한을 가할 수 있지만, 시민은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국가에 대해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는 시민권의 주체로 보는 게 가장 큰 차이임을 마침내 알았다.
박상훈 정치학자가 몇 년 전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도 역시 국민과 시민의 차이에 관한 거였다. 더불어 국가와 정부의 차이에 관해서도 논했다. 국가보다는 정부라는 말에 친화적인 사회가 되어야 시민이 '갑'이 되고 주권자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이 가슴에 와닿는데 정치학자가 말한 국가와 정부의 차이는 곧 국민과 시민의 차이를 의미했다.
주권(sovereignty) 개념을 기준으로 봐도 다르다. 국가는 주권의 대외적 측면을, 정부는 주권의 대내적 측면에 가리킨다. 대외적으로 주권의 부재가 ‘무국가 상태’ 혹은 ‘식민지 종속국’을 뜻한다면, 대내적으로 주권의 부재는 ‘무정부 상태’를 의미한다. 국가와 짝을 이루는 주권자는 국민(nation)이라 하고 그들의 정체성은 법률적 근거를 가진 국적(nationality)이 기준이 된다. 국가는 국민에게 충성을 요구할 수 있고 간첩죄나 내란죄를 적용할 수 있다. 반면 정부와 짝을 이루는 주권자는 시민(citizen)이라고 부르고, 그들이 가진 권리는 시민권(civil rights)이라 한다. 정부에 대해 시민은 자발적으로 지지할 수도 있고 자유로이 비판하고 반대할 수도 있다. 정부가 자신에게 충성하는 시민에게만 자유와 권리를 허용한다면, 이를 반대하는 시민과의 내전(civil war)은 피할 수 없다. 시민권에는 (정부조차 침해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유를 가리키는) ‘자유권’도 있고, (정부 선출에의 평등한 참정권을 가리키는) 정치권, 나아가 (정부에 사회경제적 분배 책임을 요구할 권리를 가리키는) 사회권 등이 있다.
비민주주주의 체제에서는 국가를 신성화하고 국가안보와 국가이익, 국민의 의무, 국민교육 등을 강조한다. 시민 주권을 부정하면서 그로 인한 정당성의 결핍을 늘 외부로부터의 안보 위협으로 채우려는 권위주의 체제일수록 더 그렇다. 국가보안법을 앞세워 민주화의 요구를 억압하려 한 것도 같은 이유로 이해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에도 반공을 국시(國是)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 정부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은 반공국가라는 의미를 담아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쓴다. 정부 행사라는 표현 대신 국가의 공식 행사라고 규정하길 좋아하거나,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조차 ‘임을 위한 행진곡’은 안 되고 꼭 애국가를 불러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도 국가에 대한 맹목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일 때가 많다.(박상훈, <박상훈의 다시 민주주의다-국가와 정부, 국민과 시민의 차이>, 동아일보, 2017. 05. 23. 에서)
파쇼의 찌끼가 여전히 혈관 속을 어슬렁거리는 나에게 갱생의 작은 실마리를 던져 준 고마운 칼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