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 바빠도 일 년의 한 번은 산을 오르든 왠종일 술 퍼마시고 난장을 부리든 일단 다 모이자고 결의를 다진 뒤 대망의 첫 모임을 남한의 정중앙이라 할 대전에서 가진 게 2018년이었다. 그 이듬해는 계꾼 일곱 명 중 맏형격인 김 아무개가 사는 창녕에서 판을 깔았는데 거기에 나도 게스트로 참석했었다. 그들과 나 사이에 연줄이라고는 같은 대학교 학군단 선후배지간이라는 것밖에는 없고 그들이 졸업반일 무렵 3학년 훈련생으로 입단한 나는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부대낀 게 불과 일 년 남짓일 뿐이었지만 그 인연이 고래 심줄보다 더 질긴 덕에 꼽사리로나마 끼는 행운을 누릴 수가 있었다. 형제보다 더 돈독한 우애를 자랑하는 그들이 매년 거르지 않고 회동할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역병이 창궐하고 거리두기가 일상이 된 아사리판에서는 언제 다시 모일지 그 기약조차 못 해 적잖이 답답했을 거이다. 지난 주말 햇수로는 삼 년 만에 그들이 다시 뭉쳤다. 경기도 고양에 집결한 그들은 북한산을 오른 뒤 저녁 뒤풀이를 거하게 가져 오랜만에 진한 회포를 풀었고 다음날에는 파주 임진각과 출판단지를 유람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속수무책으로 흘려보낸 지난 시간들을 몰아서 만회해볼 심산인지 다음부터는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 두 번에 걸쳐 만나는 걸로 낙착을 본 그들의 다음 모임은 올 가을께 부산 가덕도로 정해졌다고 한다.
호칭은 사람 간의 관계를 설정하는 기초다.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불리는 사람의 사회적 위치가 정해진다. 그러니 조심스럽다. 너무 과하면 오그라들고 너무 박하면 깔보는 것 같아서. 점방에 오는 손님들은 다 '선생님'이다. 깎새를 안 했으면 평생 일면식도 없을, 하물며 그 밑에서 학문을 배운 적도 없는 그들한테 '선생님'이란 호칭은 사실 과하다. 하지만 손님이란 지위에 걸맞은 호칭 찾는 게 썩 마땅찮고 대접받고 싶은 이들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어느새부턴가 '선생님'이 되었고 그 호칭은 나나 손님이나 부담이 없는 만만한 호칭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내가 진심에서 우러난 존경이나 경외, 그것도 아니면 뜨거운 우애를 느끼는 건 결코 아니라서 시쳇말로 접대용 멘트라는 겉만 번지르르한 허사로 구실할 뿐이라 숱하게 뱉어내면서도 썩 맞갖잖은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왜 이다지도 '호칭'에 열을 내느냐 하면, 엊그제 나잇살 먹어 퉁퉁 찐 몸뚱아리로 북한산을 허위허위 올랐던 바로 그들이 내 진심을 담아 '행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장대비가 좍좍 쏟아지던 2019년 늦은 봄 저녁, 창녕시외버스터미널 인근 횟집이 떠오른다. 먼저 와 있던 몇몇 일행은 전작으로 벌써 거나해져서 일 년 만에 보는 반가움일랑 어따 팔아먹고 없고 막 도착해 숨도 채 돌리지 못한 일행한테 소주 반 맥주 반을 섞은 맥주잔부터 불쑥 들이민다. 후래삼배後來三杯를 급히 들이켠 뒤 그때부터 바로 달리고 달리며 밤새 또 달렸다. 1박 2일 일정에 유의미한 계획이 아주 없진 않았다. 예를 들어 다음날 아침에 기상해서 천변川邊을 함께 산책하면서 사는 얘기 진지하게 나누는 뭐 그런 훈훈한 계획 따위일랑 온데간데없고 쓰린 속을 부여잡고 해장국집으로 직행해 아침 한 끼 때우고 믹스 커피 한 잔, 담배 한 모금을 끝으로 어영부영 모임의 종언을 고한 채 각자 집으로 향했다. 그러한 행각을 두고 중년남들의 철없는 한때쯤으로 깎아내려도 달리 반박할 게 신통찮겠다. 하지만 실로 오랜만에 나는 거기서 사람 사는 맛에 흠뻑 젖었다. 지난 옛날을 반추해 잘근잘근 곱씹어대는 술자리에서 ‘행님’들은 나이 들고 세파에 찌든 지금의 나 대신에 우리가 처음 만났을 이십 대 때 나로 허물없이 대해줬다. 잘났건 못났건 귀하건 천하건 세상의 속된 잣대일랑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아는 친한 동생으로 맞대하는 그들과 함께하면서, 과거란 아무 짝에 쓸모없는 공허한 잔재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무력해지고 무용해지는 열등감이 기습했을 때 더는 존재 가치의 불꽃이 사위어 들지 않게 지켜주는 파수꾼, 야경꾼으로 든든한 뒷배가 되어줌에 감사했다. 절대 변하지 않을 천진난만으로 과거는 물론 지금-여기까지 공존해 준 그들에게 명명하는 ‘행님’이라는 호칭은 그래서 웅숭깊다. 그래서 내게 값졌다. 올 가을 가덕도 모임에 참석하면 좋으련만 조율을 해봐야겠다.
일흔이 훌쩍 넘어 보이는 노파 셋이서 인근 공원을 걸어가다가 ‘언니, 내가 더 가깝지예?’, ‘ 맞다야. 우리 집보덤 더 가깝네.’ 도란도란하는 그들을 한참 쳐다본다. 나 많은 상노인네들 사이에서 ‘언니’란 단어가 하도 생경하고 정겨웠다. '언니'처럼 '행님'도 살포시 나를 젖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