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주將進酒를 흉내 내 술 마시자고 부추기는 글
안 궁금해도 요즘 내 일주일을 구성해 볼 테니 성의를 봐서라도 끝까지 읽어 주게.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남성헤어 커트점 알바로 일한다네. 9 to 7이 원칙이지만 마감 임박해 눈치없는 손님이 가게 문 열고 쑥 들어올라치면 여지없이 오버타임을 감수해야 하네. 퇴근길은 늘 녹초지. 이 나이에 꼬박 열 시간 동안 시다 노릇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니까. 머리 깎는 법을 배우려는 견습생으로 들어가긴 했어도 엄연히 한 가게의 피고용인이니 밥값을 해야 하는 건 당연지사. 늘 마음 졸이는 어중잽이로 어쩌다 손님 머리를 만질 기회가 온들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듯 손님의 곱지 않은 시선에 등은 식은땀으로 흥건하고, 염색약을 실컷 발라 놓고 샴푸를 해도 새치가 그대로면 고2 무렵 수학 시험에서 빵점 답안지를 받자 서른을 갓 넘겼나 싶은 수학 선생이 교직 인생에서 부반장이 빵점을 받은 걸 목도하긴 난생 처음이라는 말을 입에 게거품을 물고 흥분하던, 온갖 야지와 면박을 받으면서 매 타작을 대기하던 이후로 참으로 오랜만에 겪어보는 난감함이라네.(그때 자네가 지어준 내 별명인 '대일이 빠앙점'은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네) 올 정월부터 일했으니 달수로는 벌써 여섯 달을 육박하지만 이골이 전혀 안 나는 까닭이, 육십 년 넘도록 꼬장꼬장하게 이 바닥을 지키는 부친의 말마따나 죽으나 사나 현장에서 삼사 년을 굴러도 겨우 밥 한 술 얻어먹을 깜냥이 될동말동한 게 이 놈의 염병할 이발 기술이기 때문이겠다. 그러니 힘들다고 투정 부릴 계제도 아니라서 집에 가면 냉수에 밥 말아 먹고 그 냉수를 마시고 속 차린 뒤 잠자리에 들곤 하지.
그럼 다른 날은? 작년 9월 이후 연거푸 세 번이나 낙방한 이용사 면허시험을 또 준비하려고 이용학원을 다닌다네. 시험은 3개월마다 산업인력공단에서 치르는데 오는 6월 22일, 팔자에도 없는 4수를 준비 중이네. 싸움에 진 장수는 말이 없다지만 저간의 사정을 두고 유감이 없진 않네. 잔사설 늘어 놓아 자네 심기만 불편케 할까 저어되니 시험 얘긴 그만하겠네. 이번에야말로 끝을 보려 또 절치부심하곤 있으나 선뜻 기백이 붙질 않으니 죽을 맛이긴 하네. 학원 문이 열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밥 먹는 시간 30분을 빼고는 온 신경을 가발 자르는 데만 쏟는다네. 그래서인지 학원에 더 머문다고 뭐라고 할 사람 없는데도 내가 못 견뎌서 그만 짐을 싸 4시 전후로 자리를 떠 버린다네. 기분만 이팔 청춘이지 나이는 못 속여서 대여섯 시간 동안 가발 앞에서 사투를 벌이다 보면 삭신이 다 쑤신다. 시험일이 가까워지면서 조여드는 불안과 조바심 때문에라도 6월부터는 두어 시간을 더 버틸 작정이네. 하늘이 두 쪽 나는 한이 있어도 기필코 반드시 이번엔 합격하리라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네만…시험 때문에 골병 들기 딱이네.
그나마 요 근래 평일은 사정이 좀 나아진 편이네. 설 연휴 즈음 파킨슨병을 앓던 모친이 척추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큰 수술을 받은 뒤 지금 계신 재활병원으로 옮긴 지 달포쯤 됐다. 역병 탓에 면회를 차단 당해 병원에 갈 일이라곤 모친 군것질거리나 사서 병원 사무실에다 전해주는 일 뿐이라서 말이야. 부친을 대신해 보호자랍시고 환자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거야 이전 병원과 다를 바 없지만 예정시간을 훌쩍 넘긴 수술에 이은 중환자실 행, 더딘 회복과 벅찬 병원비 따위로 긴박한 하루하루를 겪어야 했던 대학병원에서의 두 달에 비해서는 호강도 이런 호강이 없다네. 향후 자력으로 보행하기가 난망하다는 재활 담당의의 소견에 길 끊어진 낭떠러지 앞에 선 기분이었지만 지금은 부친 말마따나 혼자 화장실 가 볼일 볼 몸 상태만 돼 줘도 오감타 여기고 호전되기만을 바라고 또 바랄 따름이다. 병상에서 지겨운 하루하루를 견디는 모친이 전화기에다 대고 어눌한 음성으로 다 나았으니 얼른 집에 데려다 달라고 어린애마냥 떼를 쓸 적마다 화장실에 갈 정도만 더 운동해서 집에 갑시다 달랠 뿐이다. 하지만 척추뼈에 십수 개의 철심을 박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상노인한테 그것이 세상 어떤 일보다 큰 노역임을 아는 나는 어찌 해 볼 도리 없는 무력감에 빠지고 그걸 지우려 술을 청한다.
월, 화요일 저녁이 술 마시기 가장 편한 때다. 수, 목요일에 안 마시는 건 아니지만 수요일은 주말 일 할 걱정에 술맛이 떨어지고 목요일은 다음 날 출근 걱정에 거의 안 마신다. 혼자서 술 마시는 데는 도가 텄다. 대취하지 않고 알딸딸할 만큼만 마실 줄 알고 속 든든한 안주를 곁들이면 다음 날이 편하다. 술이라면 진저리 치는 마누라 몰래 마시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녀의 퇴근 전에 후딱 나만의 만찬을 치른 뒤 각방 쓰는 내 방으로 곧장 들어가 이불 뒤집어 쓰면 알리바이는 완벽하다. 그렇게 게 눈 감추듯 마시는 술이 요즘 내게 유일한 위안이 됐다는 건 아무래도 내 정신이 삐걱거리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기는 하다.
혼자 마시는 술이 썩 맛있을 리 없다. 나는 원래 사람과 어울리길 좋아하는 한량이었다. 속절없는 세월이 사람마저 속절없이 외톨이로 만들어버렸는지 몰라도 내가 사람을 멀리 하진 않았다. 그런 내가 혼술을 즐겨라 하는 건 도대체 어인 까닭일까. 계기가 언제부터인지 딱히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아마 내 경제 사정이 쭉정이가 된 무렵부터라고 짐작은 한다. 나는 천부적인 리스너였다. 대화 중엔 온 정신을 상대에게 쏟아 그의 말에 집중한 뒤 그 요점을 내 머릿 속 기억칩에 오롯이 저장해 뒀다가 재회하는 자리에서 일전에 그가 늘어놨던 것들을 반추해 내서 지난 번 대화의 연장선상으로써의 대화로 윤기있게 유도하는 기특한 능력은 내 특기였다. 남을 배려함으로써 그 관계가 보다 돈독해지고 그런 세심함으로 나만큼 그 역시 내게 관심을 가져주리란 기대가 이는 건 자연스러운 셈법 아닌가. 그렇지만 내 열성에 비해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하는 상대방의 태도가 사람만 다를 뿐 어쩌면 하나같이 똑같아서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그 구도에 나는 그만 질려 버리고 말았네.
사람들은 성마르게 제 신변잡사만을 늘어놓다가 내가 몇 마디 주워섬기면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듣고는 '오랜만에 봤는데 술이나 퍼뜩 마시자'며 판을 일거에 뭉개버리지. '참담하다'는 말을 아는지? 보고 쓴대도 그릴 판인 이 어려운 한자 어휘는 '끔찍하고 절망적이다'란 뜻을 가지고 있다. 어쩌다 사람을 만나고 난 뒷끝은 늘 참담했다. 네 얘기를 들었으면 다음은 내 차례라는 식의 주고받기가 서로에게 깔끔한 처세의 덕목이라면 나의 대화 상대들은 세상을 너무 이기적으로 사는 사람들 같다. 아니면 적당하게 맞춰 주면서 살아도 됨 직한데도 상대를 위해 안 해도 될 과몰입이 고질이 된 내가 불구든지. 시대가 변해도 역지사지가 여전히 유효한 대인관계 상의 덕목이라고 믿는 내가 고루한 건지 사람들이 반지빠르게 각박해진 건지 자네 생각은 어떤가. 당사자 안전에서 따지지도 못할 거면서 불만만 하늘을 찌르네. 별무소용인 잡념으로 골머리를 썩히느니 오늘도 술이나 마시려네.
취기가 오르면 1991년, 대학 1학년 때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우리터>를 자주 떠올린다네. 당시 흔하디 흔한 학사주점 중의 한 곳일 뿐인 거기를 삼십 년 세월의 더께를 헤집고 소환하는 까닭은 교감과 연대의 장소성으로 내게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호가니색 식탁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그 시절, 사람들과 허물없이 희노애락애오욕을 공유했다. 딴에는 자못 심각했던 사안이 헤식은 농담과 악의 없는 빈정거림으로 희석화되긴 했어도 식어빠져 내팽개쳐진 안줏감 취급은 받지 않았다. 오히려 취한 척 고충에 대한 대안이나 위로를 성심껏 건네는 것으로 술자리를 갈무리하는 낭만이 있었다. 그때가 정말 그립다. 그러니 그 때 거기서 자주 함께했던 자네를 그리워하는 건 당연한 건지 모른다.
자의든 타의든 지금 난 고립을 택한 셈이네. 그렇게 혼자이면서 빛바랜 옛 추억의 꼬리나 붙들고 있는 현재의 내 일상은 분명 퇴행적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해 둘 게 있네. 더 이상 리스너로는 살고 싶지 않다는 것. 지금의 내 답답증을 해소할 어떤 무엇(누구)을 갈구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과거회귀적이라 해도.
어이쿠, 자네에게 긴히 청할 게 있었는데 서두가 길어두 너무 길었군. 자네를 떠올리니 봇물 터지듯 말문이 터져 버렸다네.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게. 각설하고, 자네 짬을 좀 내시게. 오랜만에 우리 만나 거하게 한 잔 하세. 너무 격조했잖나. 부탁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