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by 김대일

어느 전철 역인지는 모르겠다. 예쁜 원피스를 입고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서너 살짜리 소녀는 주름 자글자글하고 무표정한 노인의 손을 잡고서 전철 역 긴 통로를 아장아장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노인의 얼굴을 치어다보며 싱긋벙긋거렸다. 표정 없던 노인의 얼굴에서 희미한 미소가 슬쩍 비친다. 그건 순간이었다!

요양병원 복도 끝에서 어른 키보다 높은 창문에서 내리쬐는 햇살에 온몸을 맡긴다. 휠체어를 탄 사람은 치매 노인이었다. 그녀의 얼굴선에서 슬쩍 드러나는 어떤 갈구!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결정적 순간'.

브레송은 말한다.

“현장범을 체포하는 것처럼 길에서 생생한 사진들을 찍기 위해 나는 바짝 긴장한 채로 하루 종일 걸어 다니곤 했다. 무엇보다도 돌발하는 장면의 정수를 단 하나의 이미지 속에서 포착하고 싶었다.”

바로 이와 같은 고유의 사진 철학을 그는 ‘결정적 순간’이라고 불렀다. 이 결정적 순간에 대하여 그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기록사진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어쩌다 그 형태가 너무도 완벽하고 풍부하며 또 그 내용의 호소력이 너무 강해서 그 사진 한 장만으로 충분한, 그런 사진이 있다.”(정윤수, 『문화예술 100과 사전』, 숨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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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와 타성에 젖어 무기력해져 버린 일상 속 풍경을 뚫고 번득이는 한 줄기 영감. 그것에 반응하기 위해 우리의 무딘 감각은 늘 곤두서야 한다. '결정적 순간'의 치명적인 유혹은 하찮고 사소한 일상 속에 도사리고 있으니까. 지난 6월부터 예술의 전당에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이 열리는가 보더라. 브레송만은 직관하고 싶지만 서울이라 무리다. 서울 사람들은 좋겠다.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을 결정적으로 독점할 수 있으니. 서울이라 부러우면서 참 얄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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