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사람

by 김대일

오후 여섯 시가 막 지날 무렵 반가운 전화가 왔다. 석훈이었다. 그는 인천에 살고 서울로 출퇴근한다. 산 설고 물 선 강원도 오지에서 이 년을 동고동락했던 군대 동기다. 강원도 동부 산악대대로 자대 배치받은 소대장 동기는 나까지 여섯 명이었지만 여직 안부 주고받는 녀석은 석훈이 유일하다. 마당발인 훈이야 다르겠지만. 한 해 위 선임인 홍진 형 만나러 나가던 길에 내 생각이 나서 연락을 했단다. 녀석은 늘상 이런 식이다.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라고는 하지만 몇 년을 두절인 채로 각자도생하다가 별안간 핸드폰에 녀석 번호가 찍혀 받으면 불현듯 생각이 나서 연락한 거랬다. 그러고선 마치 어제 만났는데 미처 할 말을 다 못해 전화를 건 듯이 태연하게 나부대는 녀석한테 나는 늘 고맙고 감동을 받는다. 나를 잊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말이다.

막내딸은 대회 출전 차 전북 익산에 가 있다. 석훈의 전화가 오기 두어 시간 전에 막내한테서 연락이 왔다. 네 번을 이겨 다음 날 본선에 진출했다고 우쭐해했다. 칭찬을 듣고 싶었는가 보다. 숙식하는 곳의 음식이 맛이 없어 실망이라고도 했다. 급기야 전날 저녁에는 딴 테이블에는 주는 미역국을 자기네 테이블에만 안 주더라면서 분통을 터뜨린다. 달라고 하지 했더니 오징어젓갈이 정말 맛있어서 미역국 생각이 싹 달아났다고 했다. "어쩌라고?" 되물었더니 예의 털털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그냥"이란다. 시시콜콜했지만 들을수록 가슴이 벅차올랐다. 막내는 늘상 이런 식이다. 들어보면 별일 아니지만 밑두리콧두리 다 얘기해준다. 누군 알고 누군 모르면 서운해할까봐 엄마,언니한테 똑같이 전화를 해둔다. 스마트폰에 막내 이름이 뜨고 "아빠, 지금 바빠?" 수화기 너머로 물어오면 암만 바빠도 놀리던 일손 무조건 멈추고 본다. 돈보다 막내 목소리가 더 활력소다. 무엇보다 아비 차례를 잊지 않은 게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통 교류가 없는 사람한테서 모임 참가 안내나 경조사 참석 독려 문자가 날아오면 그 문자가 나와 그가 딱 그 정도 수준의 인간관계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증명서 같아 서글퍼진다. 안 와도 그만인 문자는 문자통에 쌓여만 가는데 실없는 농담인 양 "뭐하냐?"며 개구진 목소리가 실린 전화 받기는 드물다. 나이가 들수록 격의 없이 대놓고 지껄일 상대를 찾기 어려운 건 뼈아프다. 숨길 것도 없다. 이런 현상이 나만의 치명적인 문제인 걸. 그러니 사람한테 잊혀진다는 걸로 누굴 원망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그래서 더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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