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생신

by 김대일

아버지와 아들은 아버지가 밑반찬이 입에 맞아서 가끔 들른다는 범일동의 한 생선구이집에서 장어 정식을 시켜 점심을 먹는 중이다. 돌아오는 금요일이 아버지의 일흔일곱 번째 맞는 생신날이지만 아마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 6시10분에 집을 나서 점방에서 머리 깎을 손님을 맞이하느라 여념이 없으실 게다. 독하게 재활에 매달리는 어머니이지만 남편 생일상 번듯하게 차릴 엄두는 안 나는 당신의 몸 상태를 비감해하면서 주간보호센터로 향할 테고 평일도 모자라 주말까지 출근해 잔무 처리하느라 늘 녹초인 맏며느리한테 대신 차리라는 말은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내 새끼 내 새끼 애지중지하는 두 손녀 딸은 대학원 준비다 펜싱 훈련이다며 지 엄마만큼 매일매일이 바빠 짬을 못 내긴 마찬가지라서 아들은 지난 주부터 고민이 참 많았더랬다. 그나마 똑같은 일을 하는 아버지와 아들은 노는 날도 똑같아서 휴무날 차라리 조촐하게 점심이나 같이 들면서 위로해 드리는 게 아들 된 도리일 성싶었다.

친구같은 엄마와 딸에 비해 그리 살갑잖은 부자 사이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모르는 게 별로 없는 어머니의 주간보호센터 일상이나 주워섬긴다거나 매일 저녁 똑같은 시각에 막내손녀와 통화하는 걸 번연히 아는데도 아이의 근황을 재차 삼차 화제로 삼는다든가 자꾸 딴청이다. 또 밥상머리에서 수저질에만 몰두하는 건 점심을 함께 먹는 취지에 영 어긋나기 때문에 다가올 추석 대목에 대비해야 할 것들과 다져 먹을 마음가짐을 훈수하는 데 열을 올리고 그걸 또 짐짓 심각하게 경청함으로써 어색함을 부러 눅이려 부자지간에 타협을 본다.

마치 따로국밥마냥 각자의 번다함으로 파편화되기 일쑤인 일상에서 일 년의 한 번뿐인 생신상을 챙기려고 해도 서로의 일정을 조율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게 양친에게 송구하기 그지 없다. 허나 그럴 만한 사정이니 괘념치 말라며 쿨하게 받아넘기는 아버지의 의연함에 한편으로 안도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아들은 모처럼 부자의 정을 도탑게 쌓을 생신 점심상에 진심이고 싶었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기껏 1인분에 1만5천 원하는 장어 정식으로 때운다 한들(그마저도 아버지가 대신 계산했지만).

만수무강하시길. 늘 이대로 한결같으시길.

큰손녀한테서 전화가 왔다. 8월14일 약학대학원 편입 시험을 치르고 나면 동생하고 할아버지 댁에 가겠다고. 아버지는 연신 '오냐 오냐 내 새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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