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에프카카

by 김대일

에프카카(FKK, Frei-Korper-Kultur)라고 들어 봤나? 직역하면 '자유로운 몸의 문화'로 옷을 입지 않은 자연 상태에서 자유를 누리겠다는 독일의 나체주의 문화다. FKK는 처음 1900년대에 독일 함부르크에서 시작되어 빠른 속도로 독일 전역에 보급 되었는데, 1933년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금지되었다가 2차 대전이 끝나자 다시 번성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1960년대 해외 여행붐을 타고, 독일에 온 외국인 관광객, 다른 나라로 이주해 간 독일사람들에 의해 전세계로 빠르게 전파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독일의 원초적 자유로움은 혼탕 사우나에서도 발견된다. 에프카카를 경험한 한 여행작가의 칼럼이 인상적이어서 메모해 둔 게 있다.


그랬던 내가 독일의 나체 문화를 경험한 것은 베를린의 사우나에서였다. 발리의 스파 휴양지를 통째로 옮겨다 놓은 것 같은 ‘바발리’ 사우나에서 외국 남녀들의 나체를 마주했다. 말로만 듣던 혼탕 사우나에서 내 눈동자는 처음에 눈 둘 데를 찾지 못해 허공을 헤맸다. 신기한 건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몸을 흘깃거리거나 신경 쓰지 않는 것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모두가 천하태평일 수 있을까 싶게 느긋했다. 100년이 넘는 독일의 FKK문화와 자연주의에서 이어져온 경험과 개방적 사고를 마주한 순간이었다. 열 개가 넘는 사우나실을 알몸으로 들락거리고, 샤워도 그냥 밖에서 남녀가 같이 줄 서서 하고, 야외 수영장에서도 알몸으로 수영했다. 다 벗고 있다는 부끄러움도 잠시, 모두가 알몸인 그곳에서 뭔가 원초적 자유로움을 느꼈다. 늘어진 배와 제각각으로 생긴 허벅지, 팔다리, 가슴, 성기까지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냥 인간적이었다. 잡지에서 보던 모델 같은 몸매는 그곳에 없었다. 저들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느낌. 몸뚱어리만 있는 우린 그저 다 같은 인간이라는 것. 그런 생각이 드니 긴장했던 마음도, 괜히 혼자 신경 쓰이던 남의 눈길도 줄어들었다. 베를린의 여름에 겪어본 최고의 일탈이자 경험이었다. 독일 누드비치와 혼탕 사우나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이 많다. 나는 기회가 된다면 한번 경험해보라고 권한다. 그게 원초적 본능에 기인한 것이든, 단순한 호기심이든, 새로운 모험심이든 상관없다. 모든 것에 열려 있는 베를린의 한 조각을 만나는 최고의 경험이 되리라 믿는다. (이동미 여행작가, <베를린 다이어리-독일의 나체주의 문화>, 경향신문, 2021.06.23. 에서)


이 계절은 너무도 덥고 습해서 나처럼 땀 많은 사람은 걸치고 다니는 모든 것이 거추장스럽다. 차라리 '자유로운 몸의 문화', FKK를 실천하고 싶은 욕구가 절로 인다. 한꺼풀 벗으면 세상 홀가분하단 걸 알아채 버린 나는 지금보다 일기日氣가 더 그악해진다면 해운대 해수욕장에 돗자리 깔아두고 나체로 뒹굴거릴지도 모른다. 진정한 자유인인 체 행세하면서 말이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허튼소리는 그만두고, 출타할 때 꼭 양말을 신고 캐주얼화 아니면 운동화를 고집하던 나를 미련하다는 듯이 쳐다보던 마누라가 융통성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사람이라고 핀잔을 주면서 양말 벗고 샌들 신고 다니라는 엄명을 내렸다. 신사도가 투철한 사람은 아니지만 집 밖을 나설 때는 행색을 제대로 갖춰야 사람들로부터 눈총을 안 받는다는 개뼉다구 같은 신념을 가진 나로서는 아무리 마누라의 지엄하신 명령이라도 복종할 수가 없었다. 푹푹 찌는 무더위로 불쾌지수는 하늘을 찌르는데 내 꼬라지가 계속 눈에 거슬리던 마누라가 하루는 극대노를 하더니 날만 더워졌다 하면 온 전신이 가렵고 따가운 이유가 되도 아닌 격 차리기 때문이라면서 시키는 대로 안 할 거면 따로 나가 살라고 최후통첩을 날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양말 벗고 끈 없는 샌들을 끌고 다녔다. 그런데 그 이후로 사람이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는 거다. 날아갈 것 같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게 틀림없다. 달랑 면티 한 장 걸치고 일명 냉장고바지라 불리는 밴딩 슬랙스를 입은 채 끈 없는 샌들을 질질 끌고 다니는 입성이 요즘 내 꼬락서니인데 대단히 만족스럽다. 나만의 에프카카로는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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