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다는 것

by 김대일

지방소멸을 논하면서 예로 드는 부산 지역을 꼽을 때 둘째가라면 서러울 영도지만 영도는 늘 핫하다. 젊은 활동가들의 열정이 더해져 도시재생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영도의 역설에 대해서는 다음에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오늘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영도에 얽힌 거긴 해도 꼭 영도 얘기만은 아니다.

부산 한 일간지 2021.08.08. 자 칼럼에는 김미양이라는 청년 작가의 글( <청년의 소리-당신의 청자가 되어>, 국제신문)이 실렸는데 영도에서 벌어졌던 문화 사업 얘기가 주요 골자였다. 영도문화도시센터가 올해 6월부터 온라인 '기억전당포' 사업을 시작했단다. 2000년대 이전의 영도 주민 생활사가 담긴 사진을 주로 수집하는데 영도 곳곳에 얽힌 개인의 장소기억을 수집해 공통의 기억으로 확장해나가는 아카이빙 프로젝트다. 7월에는 오프라인 프로젝트도 병행했는데 신선동 동삼동 남항동 영선동 청학동 봉래동마다 이틀씩 거점 공간을 지정해 기억전당포를 열었다. 마을 어르신들이 '옛날 사진'을 가지고 오면 참기름으로 바꿔 주면서 짧은 인터뷰를 진행하는 거였다. 필자는 그 사업에 나흘 동안 참여하면서 느낀 바를 칼럼화했다.

참기름의 유혹에 넘어가긴 했지만 '옛날 사진'을 보면서 '그 사진에 담긴 이야기'를 들으려는 청년 무리들을 이상하게 여긴 마을 어르신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이걸 뭣에 쓸라고?"가 나흘 동안 필자가 가장 자주 들은 질문이었다니 당연하다. 필자는 그럴 때마다 "저는 어르신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어르신이 살아오신 이야기가 소중해요."라고 말하고 싶어했지만 입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은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는 논리적인 말들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라나.

설령 어르신들의 질문에 논리적으로 설득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나는 젊은 작가의 경험이 부럽다. 하루도 아니고 나흘 내내 작가는,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사진 한 장에 담긴 기억을, 사진으로 다 담아내지 못한 프레임 밖의 수많은 기억을, 그저 흘러간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2020년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도 의미가 있는 소중한 말들의 향연을 질리도록 듣고 수집했을 게 틀림없으니까.

사람한테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나이를 먹을수록 줄어든다. 듣고 싶어도 말해 주는 사람이 드물 뿐더러 있다 해도 아는 사람 몇몇에 국한되기 십상이며 그마저도 공유하는 기억을 소환하는 식상한 작업에 불과하다면 들어야 할 필요성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글줄께나 만진다는 이른바 작가들 입장에서 들을 수 있는 행운은 고갈되지 않는 소재의 화수분을 얻는 것이고 만렙의 무기를 장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군다나 내가 살아보지 못해서 책이나 드라마 따위로 간접경험할 뿐인, 하여 더 기갈이 드는 과거지사를 품은 어르신들의 인생 역정을 듣는다는 것만큼 신나고 흥미진진한 이벤트가 또 어디 있을까. 그 수많은 세상의 흔적을 헤집다 보면 건질 게 또 얼마나 많을 것이며. 그러니 그 젊은 작가의 나흘 인터뷰가 정말 부러울 뿐만 아니라 그 인터뷰를 고스란히 담은 기록이 몹시 탐난다. 칼럼은 이렇게 끝맺는다.

기록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정답을 찾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테지만, 일단은 이렇게 답을 해본다. 기록이란, 당장의 의미나 가치를 증명할 수 없다 하여도 묵묵히 세상에 흔적을 남겨두는 일이라고. 더 늦기 전에 당신의 청자가 되어, 고단했던 당신 생의 목격자이자 한 명의 지지자가 되어.(김미양, ( <청년의 소리-당신의 청자가 되어>, 국제신문, 2022.08.08. 에서)

대성할 재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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