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의 일반적인 정의란 게 특정한 과정이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면 점방의 지속가능성은 먹고 살기 알맞을 만큼 버는 일상이 큰 변수 없이 이어지는 거다. 이때 큰 욕심은 안 부리는 게 신상에 이롭다. 하루하루 전투를 치르듯 우상향만을 그리는 매상 그래프를 하염없이 좇다간 내 성정 상 지레 말라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지양하는 바다. 이쯤에서 계산기를 한번 두드려 보겠다. 달마다 지불해야 할 월세, 고정비에 마누라 손에 생활비랍시고 한 200만 원 쥐어 주고도 내 호주머니에다 비상금조로 몇 푼 쟁여 넣는 데 힘이 별로 부치지 않으면 이상적인 지속가능성에 안착한 셈이고 금액으로 따지면 300만 원쯤 된다. 그 정도 매출을 올리자면 5천 원하는 커트 손님 600명을 매달 받으면 된다. 물론 염색이니 두피마사지 손님을 감안하면 매출액이 더 늘 수 있겠으나 커트점에서 커트 손님의 비중이 가장 높은 까닭에 매달 600명 손님이라는 목표치를 꾸준하게 달성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그럼 600명을 단골손님으로 고착화시키자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개업하고 대여섯 달을 겪는 동안 손님들의 면면을 나도 모르게 유형화시키는 버릇이 생겼다. 유형화라고 해서 거창한 건 아니고 주인장한테 대하는 성향만 봐도 이 양반이 머리 깎으러 다시 올지 말지가 대충 감이 오고 확률도 높다. 한두 가지 유형을 소개하자면, 재방문율이 가장 높은 유형은 머리 깎을 스타일을 주문한 뒤 작업 중에 일체 말하지 않는 손님이다. 커트보를 거두면서 내가 "수고하셨습니다"라며 커트 작업이 끝났음을 알리면 "예"라고 짧게 응수하거나 그마저도 묵음으로 처리한다. 의자에서 일어서는 동시에 거울을 슬쩍 보는 척하면서 제대로 깎였는지 확인을 하는 눈매가 매섭다. 마음에 들면 뭉그적거리지 않고 후딱 요금을 내고 쿨하게 퇴장한다. 그러면 다음에 반드시 또 온다. 이런 손님이 재방문하면 첫방문과 다를 바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지만 작은 변화가 감지되기도 한다. 작업이 끝나고 커트보를 거두면서 내가 예의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치레를 하면 그 역시 "고생했습니다"나 "수고했습니다"라고 맞장구를 쳐 준다. 나는 그 동조를 감히 복음福音이라 칭한다. '너만한 기술자를 본 적이 없다'는 지지와 신뢰의 뉘앙스로, 혹은 크게 실수하지 않는 한 변심하지 않겠다는 신사협정으로 넘겨짚지만 현재까지 단 한 명의 이탈자도 생기지 않아서다.
처음 봤는데 입에 발린 소리를 일삼는 손님은 십중팔구 다시는 안 온다. 커트점을 숱하게 돌아다녔지만 제 맘에 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오늘 드디어 신묘한 가위손을 만났다면서 지나치다 싶을 만치 추켜세운다거나 주변 지인들한테 소개시켜 떼로 데리고 오겠다면서 공약空約을 남발하는 손님을 대하는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분간 못하는 순진한 초보 장사치 티를 벗은 이상 냉철하게 선을 긋는다. 이를테면 혼자 떠들게 냅두는 식으로.
점방의 지속가능성은 손님을 추리는 작업과 일견 통한다. 정상궤도에 아직 오르지도 못한 주제에 손님을 가리겠다는 건 아니지만 극단보다는 평균에 수렴하는 손님들로 단골층을 다지는 노력은 필요하다. 가뭄에 콩 나듯 점방을 찾으면서 요란 떠는 손님보다 있는 듯 없는 듯 수수하면서 꾸준하게 드나드는 손님들로 평균 600명을 채울 때가 오면 나도 마침내 남부럽잖은 장사꾼 노릇을 하고 있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