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지와 유적지

by 김대일

우리집에서 언덕 하나만 넘으면 송정 바닷가고 곧 이어 대변항이 나온다. 내처 기장보건소를 끼고 조붓한 이차선 도로를 달리다 보면 죽성항이 보인다. 그 죽성항에는 드라마 세트용으로 지은 성당이 유명한데 이름하야 '죽성드림성당'이다. 정작 성당은 미사 따위는 보지 않고 그 이국적인 정취로 관광객들을 유인해 사진 배경으로 활용될 뿐이다.

엊그제 노는 날 마침 휴가 중인 마누라, 약학대학원 편입 시험을 치른 큰딸과 함께 드라이브 삼아 거길 갔다 왔다(막내딸은 펜싱 연습하느라 자리를 비웠다). 정체전선이 남부 지방까지 남하한 까닭에 비가 오락가락하는 불순한 일기인데도 제법 많은 관광객들이 성당 주변을 배회하며 사진을 찍어댔다. 드라이아이스가 물 속에서 승화가 이루어지면서 뿜어내는 희뿌연 연기처럼 해무는 신비로운 자태로 죽성항 일대를 휘감으면서 성당과 묘한 미장센을 이뤘다. 사람들이 흠뻑 반할 만했다.

예쁜 것만 찾는 사람들한테 죽성왜성(두모포왜성)은 시원찮은 눈요기일 게 뻔하다. 임진왜란 때 왜군 장수 구로다 나가마사가 조선·명나라 연합군의 공격을 방어하고 남해안에 장기간 머물기 위해 쌓은 성이면서 울산의 서생포왜성·울산왜성·부산일본성을 연결하는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치욕의 상징물이 아닌 임진왜란이라는 절체절명의 국난을 극복한 우리 조상이 자손들에게 당당히 물려준 전리품이자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역사적 교훈 따위가 인생샷을 건지고자 죽성드림성당 주변 포토스팟을 물색하는 것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왜성 따위는 최태성의 <발가벗은 한국사> 프로그램에서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등장하는 자료 화면으로나 보면 족하니까. 더군다나 그날의 해무야말로 관광객들을 호리는 장치로 적재적소였으므로 왜성 따위에 관심을 기울일 여지는 전혀 없었다.

소설 『도모유키』는 순천 왜성을 배경으로 했다. 성 안의 참상이 르포르타주인 양 적나라하고도 냉철하게 그려져서 그 여운이 오래 간다. 순천이든 두모포든 직접 왜성을 보고 소설을 복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끝내 가보자는 소릴 꺼내지는 못했다. 성당을 배경으로 환상적인 사진을 건지는 중인 이들의 기분을 잡치게 할 용기가 안 났고 그 자릴 뜨면 곧장 경관 좋은 곳에서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는 일정이 남아서다.

유원지와 유적지가 공존하는 곳에서 주객이 전도된 짓을 하면 감당 못할 원망을 식구들한테 들을 테니 휴무날 고분고분하게 그들을 따라다닌 내 처신은 바른 편이었다. 다만 마음이 동해 그런 곳에 다시 갈 양이면 차라리 혼자 다녀 오겠다.


작가의 이전글코알라의 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