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까다로운 손님이 누구게? 나한테는 입학 전 아동이다. 울고 불고 난리 부리지 않으면 다행이겠거니 싶지만 한시도 가만 안 있고 꼼지락거리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깎다 보면 등짝이 다 축축해진다. 어른이면 말귀나 알아먹지 가만히 있어 달라는 부탁을 귓등으로 흘리고 버블헤드마냥 연신 건들건들하는 머리통에다 바리캉을 갖다 대다간 쥐파먹은 양 삐뚤빼뚤해지기 일쑤라 뒷덜미가 서늘해지곤 한다. 아이 요금을 더 높게 책정해 차라리 아이들 출입을 금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겠다는 망상이 아이 손님을 의자에 앉힐 적마다 드는 건 그래서 어쩔 수 없다.
그제 오후 로맨스그레이 신사 타입의 어르신은 머리를 깎고 소리소문없이 퇴장하더니 두어 시간 지난 뒤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 아이 손을 잡고 재차 점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자의 머리를 깎겠다고 데려온 게다. 일순 긴장 모드로 돌변했다. 순하게 생기긴 했는데 의자에 앉히고 커트보를 두른 뒤 바리캉 전원을 켜기 전까지는 그 본색을 쉬 드러내지 않는다. 무언가 쎄하다고 느끼는 순간 아이들은 돌발 반응을 일으키고 그에 맞춰 대응 태세를 얼마나 빨리 능란하게 갖추느냐에 따라 깎새의 노련미가 엿보인다.
머리카락이 가는 데다 머리통도 여물지 못하니 빗질 하기가 어려웠다. 빗 대기가 쉽지 않다는 건 바리캉 갖다 대는 것도 고역이라는 소리와 이음동의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긴장한 듯한 아이가 머리를 자꾸 숙여서 작업 진도는 더뎠다. 이러다간 아이도 나도 지쳐 버린다. 아이 낌새가 심상찮으면 결국 보호자가 보조로 나서야 한다. 작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보호자가 깎새 반대편에 서서 두 손으로 아이 머리통을 붙잡아 고정시켜야 한다. 그러면 아이의 반응은 울며 몸부림치거나 보호자 손에 머리통을 맡긴 채 목석처럼 가만히 있거나 둘 중 하난데 그 아이는 다행히 후자였다. 지그시 두 눈 감고 별 동요 없이 이끄는 대로 내맡기는 품이 이런 상황을 즐기는 듯도 했다. 무엇보다 아이답지 않게 과묵함이 장했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와 닮은 구석이 있다. 할아버지 역시 작업 내내 눈을 감고 묵언 수행에 전념했으니까. 진땀 흘리는 내 옆에서 아이 머리 깎는 게 제일 어렵다고 에두르는 걸 보면 당사자 속은 안 들여다 봐서 잘 모르겠지만 그 할아버지는 깎새의 심정에 공감하고 노고를 치하할 줄 아는 양식있는 분이다. 커트를 마친 뒤 할아버지 손을 잡고 점방 문을 나서려다 말고 휙 돌아서서는 공손하게 배꼽 인사를 하길래 말할 것도 없이 그 할아버지의 역시 그 손자임을 알겠더라.
할아버지는 요금을 치르면서 아이 요금은 더 받아야 한다면서 오천 원짜리 지폐에 천 원짜리 한 장을 더 얹었다. 그러면서 아들, 그러니까 손자의 아비가 며칠 전에 먼저 깎았다면서 고맙다고 했다.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로 이어지는 3대 손님은 처음인데 왠지 큰일을 한 것마냥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