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학원엘 이제는 안 나오는 한 사내는 나보다 약간 위인 연배다. 영도인가 다대포인가 하여튼 그 어디쯤에 있다는 대형 사우나 안 마사지실을 부부가 빌려 운영하는 중이라 했다. 같이 세 들어 있는 이발소 주인이 늙어서도 해먹을 수 있는 게 이발기술이라고 꼬드겼고 홀딱 넘어간 그 사내는 작년 말께 학원 자격증반에 들어왔다. 한창 잘 배우는가 싶더니 한 켠에서 무료 이발을 하는 실무반을 가리키며 왜 자기한테는 사람 머리 깎는 법은 안 가르쳐 주냐고 원장한테 대들었고, 마지못해 실무 기술도 병행시킨 원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도 시원찮을 판인데 서두른다고 될 기술이면 달려드는 사람 족족 전문가가 다 됐겠다며 늙은 원장은 빈정댔다. 아니나 다를까 자격증반, 실무반 가릴 것 없이 하는 짓마다 어색하고 서투른 데다 천성인지는 몰라도 설렁설렁 성의가 보이지 않는 듯한 태도로 손님을 대하는 꼬락서니는 내가 봐도 영 마뜩잖았다. 올해 초 늙은 원장이 팔고 나간 자리에 야심만만한 젊은 원장이 들어와 학원을 새롭게 단장했는데 사내는 잠깐 비치더니 종적을 감춰 버렸다. 그러다 올해 들어 첫 자격 시험을 치르고 얼마 뒤 학원에 다시 나타났다. 합격률 높다는 다른 학원에서 자격 시험 준비해 치뤘다면서 실무 기술은 사람 머리를 깎을 기회가 많은 이 학원에서 배우는 게 유리할 성싶어 다시 찾았다고도 했다. 제 잇속 챙기려는 최선책이라는데 가타부타할 건 아니지만 사람 많은 싸전에서 쌀 집어 먹는 병아리마냥 약아빠진 처세가 얄미웠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댔나. 사내는 한 번에 덥썩 자격 시험에 합격했다. 속이 상한 나는 한 공간에 같이 있어도 한동안 아는 척도 안 했다. 옹졸한 줄 알지만 4수를 준비해야 하는 내 앞에서 거들먹거릴 꼴을 눈 뜨고 차마 볼 자신이 없어서 내린 자구책이었다.
면허 시험 결과가 나오고 얼마 뒤인 5월 어느 날, 사내가 슬며시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학원 그만둘까 합니다. 젊은 원장 기술 뛰어난 건 인정하지만 나하고는 영 안 맞아요."
무슨 바람이 불어서 또 변덕인가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젊은 원장은 가위를 주로 활용하는 자칭 단가가 높고 고급지며 세련된 기술에 천착하는 교육이었는데 저렴한 가격에 박리다매를 추구하는 일반적인 남성커트점에서는 썩 어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발 기술이 거기서 거기지 하기에는 미용 기술을 접목한 젊은 원장의 기술이 고난도여서 학원생이 숙련하기에는 웬만큼 걸릴 시간이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현장으로 뛰어들어 지지고 볶아도 시원찮을 사내나 내 입장에서는 오래 붙잡고 여유 부릴 계제가 아닌 게 사실이었다.
사내는 박제된 기술보다 역동적인 현장성에 목을 멨다. 현장으로의 투신만이 자신의 핸디캡을 상쇄할 유일한 길임을 확신하면서 말이다. 아버지를 소개해줬다. 육십 년 경력의 현장 전문가에게 짧고 굵은 조언을 구하는 일회성 만남으로 이루어졌지만 사내는 이후로 거의 매일 부친 가게를 찾았다. 늦은 나이에다 기술도 얼떠 다른 가게 소개시켜 주기가(요즘 경기에 소개할 만한 데도 없지만) 민망하다는 부친이 냉정한 평가에 그러면 그렇지 고소해하다가 사내 사정이라며 덧붙인 부친의 다음 말을 듣고 나서는 이내 숙연해졌다.
성업은 아니었지만 먹고 살 만은 했다. 헌데 작년 역병이 돈 이후로는 임대료도 못 낼 지경에 이르렀다. 사우나하러 오는 손님이 없는데 마사지 손님이 있을 리 없으니까. 이대로 망할 순 없어서 방도를 찾던 중에 옆 가게 이발소 사장 귀띔에 솔깃했단다. 문제는 험난한 과정보다는 장밋빛 결과에 더 방점을 뒀다는 데 있다. 한 마디로 너무 쉽게 봤다는 거지. 요행히 한 번에 자격증은 땄지만 자격증과 실무는 엄연히 달라서 학원을 다닐수록 갑갑증만 더 늘었다. 부친을 만나 현장을 체험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제 능력이 너무나도 하찮다는 걸 깨닫고 절망했다. 출근하다시피 부친 가게를 찾지만 허접한 시다 자리 하나 구할 수 없으니 속만 타들어갈 뿐이라고.
누가 누굴 비난할까. 사내의 모습에서 내 자화상을 발견해서인지 더는 그를 백안시할 수 없었다.
인디언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그가 느끼는 바를 말했다.
"얘야, 마치 내 가슴속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싸우고 있는 것 같구나. 한 마리는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고, 화가 나 있고, 폭력적인 놈이고, 다른 한 마리는 사랑과 동정의 마음을 갖고 있단다."
손자가 물었다.
"어떤 늑대가 할아버지의 가슴속에서 이기게 될까요?"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내가 먹이를 주는 놈이지!"
책을 읽다 눈에 밟히는 대목을 공책에 베껴 쓴다. 그 공책을 다시 꺼내 읽다가 생뚱맞게 사내가 생각나서 덧붙여 봤다.
그건 그렇고 베낄 때는 출처까지 아울러 적어 두는데, 이건 어디서 봤는지 도무지 모르겠단 말야. 혹시 아시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