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인생에서 느끼는 기쁨의 구십구 퍼센트는 첫 경험에서 나와. 노래나 영화는 옛날 들었던 원곡, 원작이 좋고 도시는 고향이, 집은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곳이 최고지. 어떤 이야기든 처음 들었을 때 감동이 크잖아. 과거에 대해서 인간은 늘 긍정적으로 기억하게 되어 있어. 설령 그 기억이 잘못된 것이라도. 우리의 뇌가 설탕처럼 좋아하는 게 바로 그거니까. 어린 시절, 사춘기 또는 청춘 시절에 좋아하던 음악, 영화, 유행, 제품, 음식, 모든 것에 대한 취향은 평생을 가. 그 느낌을 불러일으켜서 돈을 쓰게 만드는 게 현재 기업에서 소비자에게 하는 일이야. 그냥 지나가는 건 없어. 자연스러워 보일수록 의심하라고.
- 성석제, 「단 한 번의 연애」 에서
전철역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1층이 은행 지점인 건물 한 켠에서 달고나를 파는 늙수그레한 영감이 늘 자리잡고 있다. '늘'이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지금 사는 동네로 우리 가족이 이주한 20년 전에도 그 자리를 고수했으니까 가히 터줏대감의 반열이다.
영감은 들을 순 있어도 말을 못 한다. 그러니 호객 역시 할 수 없다. 영감은 나지막한 판대기 몇 장을 둘러 자기 영업장을 표시한 뒤 쭈그리고 앉아 작은 버너에 설탕을 녹여 만든 달고나를 봉지에 담아 판다. 호객을 할 수 없는 그가 이십 년 넘도록 무난하게 장사를 이어갈 수 있는 수완은 뭔가 뭉클한 사연을 담은 듯한 눈매로 지나는 행인을 향해 애원 섞인 시선을 보내면 좌판에 널린 달고나와 말 못하는 노인의 애처로움이 화학 작용을 불러일으켜 자연스럽게 지갑을 열게 만드는 강한 설득력에 있다고 그 거역할 수 없는 상술의 포로가 여러 번 되어본 자로서 단언할 수 있다. 가히 추억팔이의 명인이다.
영감은 담배를 즐기는 편이다. 손님이 뜸해 무료하면 좌판에서 나와 옆 행상 아저씨와 맞담배를 피우곤 한다. 한 번은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주섬주섬 꺼내는 영감을 봤다. 그가 꺼낸 담뱃갑은 빨간색이 선명한 '말보로'였다. 그 광경을 본 뒤로 나는 더 이상 달고나를 사지 않는다. 달리 규정할 수 없는 감정(갑자기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은 듯한 배신감이라고 궂이 설명하면 적절할는지 모르겠지만)이 영감을 의심하고 배타시키고 말아서.
서울 생활하던 1990년대 후반, 종로를 나가면 신호 대기하는 행인들에게 껌을 파는 살짝 허리가 굽은 노파를 볼 수 있었다. 종로 바닥에서 노파의 강권에 한번쯤 난처해 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정도로 가히 명물이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운전사 딸린 '벤츠'에 올라타는 껌팔이 노파를 봤다는 소문을 듣고는 노파가 보이면 나는 다른 길로 피해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