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보러 가다

by 김대일

휴무일인 어제 큰아버지와 할머니 산소를 모신 양산 신불산 공원묘지를 다녀왔다. 최근에 차 사고가 나 폐차 처분한 탓에 큰아버지는 일주일 전부터 아버지에게 동행을 제안했지만 내가 대신 가게 됐다.

할머니 산소에 들른 건 실로 오랜만이다. 할머니는 생전에 나를 끼고 사셨다. 첫 손주이기는 하나 집안의 명맥을 유지할 장손도 아닌 나를(아버지는 차남이었지만 할머니을 봉양했다) 유별나게 아낀 까닭을 나는 잘 모르겠다. 그저 어릴 때부터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한 나도 할머니를 누구보다 사랑했을 뿐이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89년 겨울에 별세하시고 우리집에서 장례를 치렀는데 난생 처음 죽음이란 것을 목도했을 때의 충격은 대단히 컸다. 그것도 내가 사랑해 마지않던 할머니의 죽음이었으니 그 상실감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상중 내내 통곡하고 까무러치고 통곡하고 까무러치기를 반복했다. 할머니를 회상하는 데 있어 나를 향했던 편애가 불편한 기억으로 남았을 가족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유난스러웠으되 각별했던 조손 사이를 폄훼하지는 못한다.

부산으로 낙향한 뒤 나는 참 다사다난했다. 사는 게 막막해 심신이 고달플 때면 막걸리 한 병, 과자 한 봉 사들고 할머니가 잠들어 계신 신불산 공원묘지로 향하곤 했고 할머니 묘 앞에 앉아서 산 사람과 대화를 나누듯 지껄이기 일쑤였다. 지켜 달라고, 도와 달라는 하소연으로 혼잣말을 늘 끝맺었지만 그렇게 마음 눅이고 가면 한결 편해졌다. 하지만 빚잔치하느라 차를 팔고 나서부터는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0년이 다 되어 간다. 항상 내 어깨 위에서 나를 굽어 살피시는 듯한 할머니 수호신에 대한 대접치곤 갈수록 무심했던 게다. 이번 성묘길에 두말없이 동행한 까닭은 결국 죄스러움일 테다.

술잔 채우고 오랜만에 할머니께 인사 드렸다. 고시레하면서 주변 묘 주인들한테도 안부를 전하면서 속은 안 그런데 겉은 살짝 까칠했던 우리 할머니와 오래도록 친하게 지내 줘서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꾸역꾸역 이만큼 지내는 것도 다 할머니 덕분이라고, 여전히 철딱서니 없는 티를 못 벗은 손주 새끼 앞으로도 계속 이뻐해달라고 할머니에게 아양도 떨었다. 아침 공기가 참 달았다.

작가의 이전글일진日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