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深甚한 사과謝過​

by 김대일

심심深甚한 사과謝過가 일으킨 파장이 크다. 8월 20일 한 카페가 공식 트위터를 통해 웹툰 작가 사인회 예약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과 관련해 “예약 과정 중 불편 끼쳐 드린 점 다시 한 번 심심한 사과 말씀드린다”고 공지했다. 이 글을 읽은 일부 사용자들이 욕설과 함께 “심심한 사과? 난 하나도 안 심심해”, “어느 회사가 사과문에 심심한 사과를 줌”, “이것 때문에 더 화나는데 꼭 ‘심심한’ 이라고 적어야 했나”라는 댓글을 달면서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심심한 사과’가 등장했다.

심심한 사과 논란은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 높은 문맹률과 낮은 문해력을 새삼 체감했다고 질타하는 반응과 "우리가 잘못해서 미안하다"로 쓰면 간단히 해결될 일을 일상생활에서 잘 쓰지 않는 한자 표현을 갖다 쓴 것 자체가 달갑잖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듯하다. 건수 제대로 건진 듯한 언론은 또 다시 우리나라 국민, 특히 청소년의 낮은 문해력을 우려하고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내는가 하면 공공사회를 살찌워야 할 지식사회의 언어가 대중과의 괴리를 자초해 지식인 혐오로 이어짐으로써 반지성주의를 야기시켰다는 데서 논란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으려고도 했다. 다 그럴듯하지만 그 중에서 내 마음에 와닿은 내용은 스스로 '교양의 보따리장수'를 자처하는 김태권 만화가가 쓴 칼럼이다. 칼럼 내용 중 영국작가 조지 오웰의 <정치와 영어>라는 글을 인용한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이 나는 달갑지 않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쓴 <정치와 영어>라는 글이 있다. "익히 보아온 비유는 사용하지 말라"거나 "외래어나 전문 용어는 그에 대응하는 일상어가 있다면 쓰지 말라"거나 하는, 눈길 끄는 원칙이 나온다. 우리글 우리말에 비추어도 맞는 말씀 같다.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는 글귀는 "깊이 사과한다"로 풀어도 된다. "내가 미안하다"거나 "이 점은 내 잘못이다"라고 또렷이 밝혀 적으면 더 좋다.(김태권 만화가, <창작의 미래-존중하되 두려운, 변화>, 경향신문, 2022.08.25.)

'심심한 사과' 표현 논란 와중에 나는 뜬금없이 고종석 글이 떠올랐다.

이런 유의어 쌍 가운데서 고유어 계통의 말들은 대체로 친숙한 느낌을 주고, 한자어 계통의 말들은 공식적인 느낌을 준다. 이것은 영어의 경우와 비견할 만하다. 영어의 어휘도 크게는 게르만 계통의 어휘와 (그리스-)라틴-프랑스어 계통의 어휘로 대별할 수 있는데, 이 두 계통의 어휘가 무수한 유의어 쌍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영어에서도 게르만 계통의 어휘는 대개 친숙한 느낌을 지닌 데 비해, 라틴-프랑스어 계통의 어휘는 공식적인 느낌을 준다. 예컨대 영어의 inside와 interior, outside와 exterior, birth와 nativity, backbone과 spine, breathe와 respiration, work와 labor 같은 유의어들 사이의 관계는 우리말에서 안과 내부, 바깥과 외부, 태어남과 출생, 등뼈와 척추, 숨쉬기와 호흡, 일과 노동 사이의 관계에 견줄 만하다.(고종석, 『국어의 풍경들』, 문학과지성사, 1999, 56~57쪽)

그는 국어 순화론에 입각한 근본주의적 입장을 취하기보다는 라틴-프랑스어 계통의 무수한 차용어들이 영어의 어휘를 풍부하게 하고 영어의 문체를 섬세하게 만들었듯, 우리말의 한자어들은 한국어의 어휘를 크게 불리고 문체를 기름지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같은 책, 57쪽) 고종석의 내용을 그대로 좇는다면 '심심한 사과'는 '미안하다'의 보다 기름진 표현이어야 하는데도 언중들은 왜 성을 내는 걸까. 김태권 만화가는 옛날 옛적 제사장 계급의 유습과도 같은 젠체하는 말은 설령 오래고 고운 말이라고 해도 사라지는 변화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말한 사람한테 한자로 써보라고 하면 단숨에 써 낼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도 처연한 계급 우화'로 언중이나 괜히 야코죽이거나 '통석의 념'처럼 "잘못했다"는 말을 하기 싫어 어정뜬 표현으로 슬그머니 얼버무리려는 어려운 말이 사라지는 현상이 민주주의 문화가 가까이 온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의견에 나는 동조하는 바이다. 덧붙여 자기가 모르는 말을 썼다고 화를 내는 성난 사람이 우리 사회에 왜 이렇게 많은지 우려하는 점 역시 공감하는 바다. 모르는 말 같으면 설명을 들으면 될 일이지 역정은 왜 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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