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 이야기

by 김대일

일요일 낮에 두 딸이 점방엘 들렀다. 중학교 졸업사진을 다음날 찍을 예정인 막내딸의 개량 한복을 빌리러 서면으로 마실 나왔다가 아빠 점방으로 행차한 게다. 엄마와 막내딸은 개업할 즈음 응원 방문을 왔었지만 큰딸은 대학원 편입 시험을 준비하느라 이제서야 오게 되었다. 온 김에 할머니 댁에 들러 두 분과 저녁도 먹을 참이니 하루 일정이 좀 빡빡하겠다.

자매는 여섯 살 터울이다. 터울이 제법 져서인지 동생은 언니한테 무척 고분고분하다. 동생이 순순한 만큼이나 언니도 동생을 유순하게 대한다. 오뉴월 하루볕이 어디냐며 상대적으로 오래 산 언니가 유세를 부릴 만도 한데, 혹은 펜싱 운동으로 체격이 다부진 동생이 땅콩만한 언니(실제로 몸집이 쪼끄맣다)를 제 손바닥 안에서 가지고 놀 법도 한데 한집에서 식구로 뒹굴고부터 언니가 동생을 구박하거나 동생이 언니한테 대드는 꼴을 여지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타고난 천성이 얌전할 뿐더러 평소에는 털털하다가도 수틀리면 잡도리하는 성깔이 불거지는 제 어미가 무서워서라도 불미스러운 짓을 자초하지 않는다. 어쨌든지 간에 머리가 굵어질수록 자매 간의 우애는 점점 더 깊어지고 서로를 위해주는 품이 아기자기해서 그런 걔네를 보는 낙에 아비는 그나마 살 맛이 나는 것이다.

두 살 터울 형제는 어렸을 때부터 말 섞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같은 방에서 지내면서도 어지간히 데면데면했다. 동생이 서울로 유학을 간 뒤로는 그나마 실낱같던 형제애마저 흐물흐물해졌다. 형이 직장 생활하러 서울에 잠시 살 때는 제대 후 복학한 동생, 그 여자친구(나중에 둘이 맺어졌으니 계수가 되었다)와 어울려 놀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동생 여자친구(계수)가 학교 동기라며 형에게 소개해 준 여자와 형이 사귄 지 일 년 만에 여자가 잠수를 타는 바람에 동생, 동생 여자친구와는 어색한 사이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형제면서도 남남처럼 산 나날이 쌓여 갔다. 낙향한 형이 뒤웅박 신세를 못 면하자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는 동생한테 손을 벌리기 일쑤였고 동생은 차라리 밑 빠진 독에 물을 붓지 사람이 할 짓이냐며 더 이상의 지원은 없다고 제 형수한테 단호하게 선언했다. 똑바르고 처신 바른 시동생이 오죽하면 그럴까 이해 못할 바 아니었으나 평생 자존심 하나로 버틴 마누라는 왜 자기를 비참하게 만드냐며 남편을 야속해했다. 그 일이 빌미가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시댁과는 감정적으로 상당한 거리를 두는 마누라다. 맏며느리로 해야 할 최소한의 책무만 이행할 뿐.

형제 사이의 감정의 해자는 깊고도 넓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게 특정한 사건에서 비화되었다고 여기는 건 순진한 발상이다. 적조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 굳어져 버린 관계의 단절은 불신의 오해를 낳았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뼈대에 덕지덕지 붙어 가족의 해체를 촉진시키다 어떤 빌미가 트리거가 되어 표면화되었을 뿐이다. 향후 둘 사이에 의미있는 의기투합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데면데면한 감정선을 유지한 채 서로의 인생에 간섭하지 않으면서 사는 게 서로의 신상에 이롭다. 피를 나눈 형제랍시고 유대감을 과시하는 따위의 어리석은 짓은 그들의 식구들이 더 안 바랄지 모른다.

자매가 변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인생을 살다 보면 세상의 풍파에 맞닥뜨리기 마련이지만 벅찬 줄 뻔히 알면서 혼자 부대끼다 탈진해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비록 큰 힘이 못 되더라도 내 언니, 내 동생의 지친 몸뚱아리 편히 쉬게 해 주는 유일한 정서적 피난처가 자기임을 늘 새기는 자매로 자라 주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러지 못한 아비의 속죄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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